– 일본 어느 공원을 걷다가, 문장이 피어났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어느 날, 나는 일본의 한 공원을 걷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었고, 일부러 찾아간 곳도 아니었다.
숙소 근처에 있던 조용한 동네 공원.
구글맵에선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녹지’ 정도로만 나와 있는 곳이었다.
그날 나는 특별히 뭔가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모든 게 조금씩 지치는 시기였고, 글도 잘 안 써졌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그날 아침, 뚜껑 열린 병처럼 뭔가가 ‘넘쳐흘러버린 기분’이 들어서, 숙소에만 있기는 싫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섰을 때, 처음 들은 소리는 바람에 부딪히는 대나무 잎 소리였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댓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낸 그 사각사각한 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생생했다.
그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연못이 나왔고, 연못엔 연잎이 퍼져 있었다.
그 위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살짝 앉았다.
잔잔하던 물결이 아주 작게 퍼졌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한 감정을 느꼈다.
슬픔도, 기쁨도 아니고… 그냥 ‘조용함’ 자체.
이렇게까지 아무 말도, 아무 해석도 필요 없는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날 공원에서 돌아와 숙소에 앉았을 때,
나는 아무런 목적 없이 노트를 펼쳤고, 그냥 한 줄을 적었다.
“오늘은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줄이 시작이었다.
그다음 문장이 스르륵 따라 나왔다.
자연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준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 조용한 감각, 그 정적인 리듬 안에서 묘하게 안정되었다.
생각을 밀어붙이지 않아도, 언어가 떠오를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이후에도 일본을 여행하며 공원들을 자주 걷게 됐다.
도쿄 도심 속 공원부터 지방 소도시의 숲길까지.
어딘가에는 늘 고요한 연못이 있었고, 바람에 반응하는 나무들이 있었고,
그 정적인 조화가 내 안의 언어를 천천히 흔들어 깨웠다.
때로는 글이 머리에서가 아니라 걸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장면 하나가,
몇 주 뒤 내 글의 첫 문장이 되기도 한다.
그 조용한 일본의 공원에서,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내 안에서 말이 되었다.
말 없는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말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