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우물에서 샘물까지

by 코난의 서재

커서가 깜빡인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그러나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빈 페이지는 내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나는 마른 우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끝에서 술술 흘러나오던 문장들이 어디로 갔을까. 평소라면 벌써 몇 줄은 채웠을 텐데, 오늘은 한 글자조차 낯설다. 마치 평생 써왔던 언어가 갑자기 외국어가 된 것처럼, 모든 단어가 어색하고 서먹하다.

막힘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마치 구름이 해를 가리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완전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는 숨 쉬는 것만큼 당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문장이 진부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누군가 쓴 이야기 아닐까?' '너무 뻔하지 않나?' '이게 정말 쓸 만한 가치가 있나?'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까마귀가 어깨에 앉아 끊임없이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결국 내 안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 버렸다.

처음엔 며칠만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흘러도 빈 페이지는 여전히 빈 페이지였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시작하는 문턱은 더 높아졌다.

그제야 나는 이 막힘의 정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최근 몇 달간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더 좋아야 해', '더 특별해야 해', '더 의미 있어야 해'. 내적 검열관이 창작의 샘물에 독을 풀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막힘을 뚫어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카페를 전전했다.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영감을 줄까 싶어서. 하지만 장소를 바꾼다고 해서 마음속 사막에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다른 이의 창작물이 내 안의 잠든 무언가를 깨울까 했지만, 때로는 오히려 '나는 저렇게 못 써'라는 열등감만 키웠다.

그런데 산책은 달랐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시간들,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들이 조금씩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글로 이어지지 않았다.

막힘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절망스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3년 전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루에 감사한 것 세 가지만 적어보세요. 작은 것부터요."

그때부터 시작한 감사일기 습관이 있었는데, 막힘이 시작되면서 언제부턴가 소홀해지고 있었다. 창작에 대한 부담감에 눌려 살면서,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오랜만에 감사일기를 다시 펼쳤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겠다는 욕심 없이, 그냥 하루의 작은 조각들을 적어내렸다.

오늘의 감사: 따뜻한 아메리카노, 버스에서 자리 양보해준 할머니, 퇴근길 노을. 다음 날: 친구가 보내준 재미있는 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기 미소, 새로 산 양말의 폭신함.

이 소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문장들이 놀랍게도 내 안의 잠든 무언가를 깨웠다. 완벽함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그냥 쓰기'를 다시 시작한 순간, 언어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3년간 이어온 감사일기를 다시 시작하며 나는 잊고 있던 진실을 떠올렸다. 창작은 한 번에 거대한 성을 짓는 일이 아니라, 벽돌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완벽한 첫 문장을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불완전해도 첫 문장을 쓰는 게 낫다는 것을.

나는 다시 작은 약속을 했다. 매일 감사한 것 세 가지씩, 그리고 뭐든 좋으니까 한 페이지씩 쓰기로. 때로는 꿈 이야기였고, 때로는 길에서 마주친 풍경이었다. 품질보다는 꾸준함에 집중했다.

이 작은 실천이 점차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다시 불러들였다. 마치 얼어붙었던 강물이 봄이 되어 다시 흐르기 시작하듯, 문장들이 조심스럽게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긴 터널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창의적 막힘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내가 어떤 지점에 와 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였다는 것을. 완벽주의라는 달콤한 독,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족쇄, 창작에 대한 부담감이라는 검은 구름들을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쉼의 소중함도 배웠다. 계속 달리기만 하는 말은 언젠가 쓰러진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멈춰 서서, 바람을 맞고, 다른 것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내 하루는 예전과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매일 밤,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것 세 가지를 적는다. 그리고 아침엔 15분간의 자유 글쓰기로 하루를 연다. 목적도 형식도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이 시간은 내 안의 창작 엔진을 예열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그리고 '불완전함과 친해지기'를 연습하고 있다. 첫 번째 초고는 엉망이어도 괜찮다는 것, 수정과 편집이라는 마법을 통해 글이 완성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무엇보다 창작의 순수한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의 평가보다는 쓰는 순간의 설렘에,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둡고 긴 터널은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더 자유로운 창작자가 되었다. 완벽함의 감옥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창작의 진짜 의미를 다시 만났다.

모든 창작자에게 막힘은 언젠가 찾아온다. 그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 하나를 켜는 용기, 완벽하지 않아도 한 글자씩 써나가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막힘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에서 더 깊고 따뜻한 창작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막힘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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