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멈췄다.
그곳은 프라하 외곽, 지도 앱도 정확히 잡지 못하는 역이었다. 안내방송은 체코어로만 흘러나왔고, 플랫폼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배낭을 메고 열차에서 내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이 낯선 정류장에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곧 후회가 밀려왔다. 와이파이는 터지지 않고, 역 안 작은 카페는 현금만 받았다. 유로나 달러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말 그대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공간에 서 있었다. 언어도, 돈도, 위치 정보도 없이.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황스러움 뒤에 오히려 해방감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애썼지만, 손짓과 웃음만이 오갔다. 아이가 내 손에 초콜릿을 쥐여주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짧은 미소가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길을 잃은 줄 알았던 그 하루.
나는 '계획 없이 하루를 살아보는 법'을 처음 배웠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대화 대신 관찰을 하게 되었고, 정보를 찾지 못하니 내 감각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걷는 속도는 느려졌고, 보는 풍경은 깊어졌다.
프라하의 정류장 한구석에서, 나는 내 안의 '통제 욕구'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마주했다.
그게 무너지자, 뜻밖의 자율성과 생명력이 나를 채웠다.
그 후로도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그날처럼 완전히 '낯선 나'로 돌아본 순간은 없었다.
나를 낯설게 만든 그 장소는 결국,
내가 진짜로 누구인지 묻는 질문을 안겨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은 더 유연해졌다.
'익숙함이 없는 하루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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