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잘’ 하고 있었다.
잘 웃었고, 잘 참았고, 잘 버티고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넌 늘 씩씩해서 좋아”,
그 말이 나를 점점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어느 순간, 하루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루에게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동으로 흘러가는 일상.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웃다가
밤이면 어김없이 조용히 무너지는 나.
그래서 떠났다.
누구도 나를 잘 안다고 말하지 않는 곳으로.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
나를 평가하지 않는 시간,
그게 간절했다.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용기 없는 선택'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어쩌면, 나를 구하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걸.
여행은 나를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보게 해주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괜찮다는 걸,
그곳의 공기와, 낯선 길과, 우연히 만난 풍경들이 말해주었다.
돌아와서도 여전히 나는 같은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잠시 멈춰 서는 용기가 나를 살린다는 걸 배웠다.
떠났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만났다.
나는 그래서 떠나야만 했다.
살아내기 위해.
나로 남기 위해.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에게 길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