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엄마는 왜 쟤만 챙겨?”
“쟤 동생 좀 이상하지 않아?”
아이들의 말은 작았지만, 나는 선명히 들었다.
제주의 바람보다 차가운 말들.
그 말 속에서 나는 늘, 동생의 그림자 뒤에 있었다.
웃고, 참는 아이.
대답 대신 고개 숙이는 아이.
그게, 나였다.
내 고향은 제주다.
누군가는 치유의 섬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말 못 할 감정이 눅눅이 스며든 곳이었다.
동생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해 움츠렸고,
엄마는 늘 아프셨고,
아빠는 말없이 버티셨다.
엄마는 자주 말했다.
“소연아, 넌 잘돼야 해. 너라도.”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감정’보다 ‘엄마의 기대’에 더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공부는 선택이 아니었다.
도망이자 책임, 그리고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래서 서울을 택했다.
멀어지면 좀 자유로울까 싶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제주에 갔다.
관광객처럼이 아니라,
비일상의 낯선 이방인처럼.
공항에 내리자,
공기는 그대로인데, 나는 달라져 있었다.
이젠 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눈물이 먼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골목마다 흘러나왔다.
동생을 데려다 주고 다시 학교로 뛰어가야했던 길,
엄마가 누워 계시던 병실 창 너머의 노을,
운동회 날 나만 없던 가족석.
나는 그 장소들을 다시 걸었다.
이번엔 숨지 않고.
어느 조용한 오름에 올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나는, 많이 억울하고 외로웠어.”
말을 꺼내는 순간,
마치 그 아이가 내 안에서 울먹이며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응, 나 지금 알아.
그때 너 정말 잘 버텼어.
지금은 내가 널 지켜줄게.”
제주는 여전히 나를 시험하듯 낯설었다.
동생은 여전히 어린 말투로 살아가고 있고,
엄마는 “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아빠는 항암 치료 중이시다.
나는 장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때의 나를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비일상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곳을 다른 시선으로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여정 끝에서
나는 드디어 진짜 나를 꺼내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