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지금처럼 잘하지 못하던 시절, 나는 오키나와로 첫 자유여행을 떠났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앞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는 길,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택시 문을 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인사말을 꺼냈다.
“곤니치와.”
하지만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차이나?”
당황한 나는 손사래를 치며 “노노! 코리아, 코리아!”라고 외쳤다.
그러자 아저씨의 얼굴에 금세 웃음이 번졌고, 곧 익숙한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아~ 코리아! ~ 김치~”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김치국의 딸’이 되었다.
지금이야 일상 회화 정도는 어렵지 않게 주고받지만, 그때는 ‘곤니치와’, ‘아리가또’, ‘스미마셍’ 세 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세 마디만으로도, 아니 어쩌면 그 어설픈 어휘 덕분에 더 가깝게 느껴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말보다 몸짓과 표정으로 더 많은 걸 나눴다. 나는 종이 지도를 펼쳐 보이며 “이거, 슈리죠?”라 묻고, 아저씨는 운전대를 휙 돌리며 “이예~ 슈리~ OK!” 하고 외쳤다.
그 풍경은 지금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창밖으로는 낯선 나라의 열대 바람이 스치고, 창 안에서는 두 사람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채로 시트콤처럼 엉뚱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호등 앞에 멈췄을 때, 아저씨가 불쑥 말했다. “딸, 코리아. 교토. 일본 남자 결혼.” 잠깐 정적이 흘렀지만, 나는 얼른 알아차렸다. 아, 따님이 한국 사람과 결혼하셨다는 이야기구나. 아저씨는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웃고 있는 젊은 부부와 귀여운 아이 둘. 사진 속 가족은 행복해 보였고, 아저씨의 표정엔 자랑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문제였다. 사진을 가리키며 그는 진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사이코… 패밀리.” 나는 순간 멈칫했다.
사이코라고? 그건… 정신이 좀 이상하다는 그 ‘사이코’ 아닌가?
당황한 얼굴을 보았는지 아저씨가 급히 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노 노 ! 사이코~ 사이코! 굿! 최고, 최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가 말한 건 ‘사이코(最高)’,
‘최고’라는 뜻의 일본어였던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언어의 어긋남이 만들어낸 해프닝, 그 안에서 전해진 마음은 오히려 더 선명했다.
그 짧은 택시 여정 동안 우리는 국적도 다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엔 부족함이 없었다. 아저씨는 나를 ‘코리아 딸’로, 나는 그를 ‘사이코 아빠’로 기억하게 됐다.
도착 후 내가 내릴 때, 그는 창문을 내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코리아~ 아리가또! 사이코 걸~!”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푸는 동안에도, 늦은 밤 바닷가를 거닐며 바람을 맞을 때에도 그 인사가 계속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진심은 언어보다 빠르다는 것을.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여행의 진짜 묘미는
그렇게 뜻밖의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음이 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