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단지 산책을 하려던 것뿐이었다.
마음이 좀 어수선해서, 아무 길이나 걷고 싶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자고, 익숙한 골목에서 한 블럭 더 걸어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길은 곧 낯선 담벼락과 굳게 닫힌 철문들, 그리고 전봇대에 붙은 오래된 전단지만 남은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쪽이 아닌가…?"
몇 번을 돌아가려 했지만, 돌아가려는 방향마다 왠지 전에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평소라면 당황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발길을 돌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걸었다. 모르는 동네의 오후 공기, 낮게 들려오는 TV 소리, 식빵 굽는 냄새, 그리고 혼잣말하듯 걷는 나 자신.
가던 길 한 켠에, 조그만 화단을 꾸며놓은 골목이 보였다.
작은 화분에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마음이 좀 괜찮으셨으면 좋겠어요 :)”
순간, 울컥했다.
누군가의 다정한 마음이, 말도 없이 지나가는 행인을 위로하고 있었다.
내가 괜히 길을 잃은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 낯선 길 한복판에서, 나도 모르게 꾹 눌러 담아둔 감정들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꼈다.
결국 나는 다시 큰 도로를 만났고, 익숙한 카페가 보이는 순간 '아, 여기였구나' 하며 웃음이 났다. 분명 길을 잃었는데도, 이상하게 돌아오는 길은 훨씬 가벼웠다.
가끔은 목적지 없는 걸음이 더 나를 잘 데려다주는 것 같다.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잊고 살던 감정들이, 엉뚱한 골목을 걷다가 불쑥 고개를 든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도 가끔 그런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 일부러 모르는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그날처럼, 아주 작고 다정한 문장을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가끔은 길을 잃어야, 나를 다시 만난다.
그날의 나는… 꽤 괜찮은 방향으로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