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알려준 건 용기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by 코난의 서재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사실 그 시절, 나에게 “창업”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생소했다. 지금처럼 스타트업이 흔히 오르내리는 말도 아니었고, 인터넷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다. 그때는 겨우 나우누리, 천리안 같은 PC통신이 있던 시절이었다. 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경험보다 책상 앞에서 자료를 뒤적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그래서 ‘창업 동아리’에서 대학생 여행사라는 아이템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이 끌렸다. 값비싼 패키지 대신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을 만들자는 아이디어. 나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주저 없이 그 동아리에 발을 들였다.

막상 시작해보니 재미있었다. 아이디어를 짜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팀원들과 밤새 토론하는 과정은 낯설지만 짜릿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준비한 창업 아이템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6개월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시장조사를 하고, 사업계획서를 수십 번 고쳤으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거울 앞에서 100번은 발표 연습을 했으니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표 당일, 예상치 못한 질문 하나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고객의 진짜 니즈를 어떻게 파악했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책상 앞에서 추측만 했을 뿐, 정작 여행을 원하는 대학생들과 직접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완벽해 보였던 계획은 사상누각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그 뒤로 몇 달간은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살았다. 왜 그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도망만 쳤을까.

나는 평소에 누구보다 소통을 잘한다고 자부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상담역, 모임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진짜 대화를 하지 못했다. 왜였을까?

돌아보니 나는 늘 편한 대화만 택했던 것 같다. 가볍고 재미있는 얘기는 잘했지만, 무겁고 아픈 얘기는 피했다. 상대의 진짜 마음도, 내 마음도 마주하지 못했다. 발표장에서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였다. 나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만 완벽한 해답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 실패 이후 나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가정하지 말고, 물어보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책상 앞에서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먼저 사람들과 대화한다. 친구나 가족과 갈등이 생겼을 때도 혼자 추측하지 않고 솔직하게 묻는다.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는 내 해석에만 의존하기보다 상사와 동료의 의도를 확인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괜한 질문을 하는 것 같고, 무능해 보일까 걱정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내가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더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는 책상 앞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나오지 않는 생생한 통찰을 주었다.

돌아보면, 그때 발표에서 무너진 경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만약 운 좋게 무사히 넘어갔다면,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진짜 소통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실패는 아프다. 부끄럽고 화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책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뭘 놓쳤지?”

나는 이제 실패를 ‘내가 못 본 것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친구가 “야, 너 뒤에 뭐 묻었어” 하고 알려주는 것처럼. 그 순간은 창피하지만, 결국 고맙지 않은가.

실패는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덕분에 나는 다시 질문을 배우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나를 알게 된다.

그래서 실패는 끝이 아니라, 내 삶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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