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움은 늘 여행 같았다. 그런데 그 여행이란 게 늘 근사한 건 아니었다. 가끔은 “이 버스 맞나?” 싶어 내렸다가 엉뚱한 동네에 떨어지기도 했고, 지도도 없는 길을 발로 더듬으며 걷기도 했다.
처음 수학 공식을 봤을 때가 그랬다. 칠판 위에 낯선 기호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냥 외계어였다. 친구들이 “이건 쉽잖아” 하는데, 내겐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였다. 결국 그날 집에 와서, 분노 섞인 목소리로 “대체 이 기호 만든 사람 누구야?!”라고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웃긴 건, 그렇게 투덜대며 붙잡았던 문제들이 나중엔 의외로 재미있어졌다는 거다.
배움의 길 위에서는 늘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어느 가을 오후, 도서관 한쪽에서 우연히 집어든 시집 한 권. 두껍지도 않은 그 책 속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 글자가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그 순간, 공부라는 게 단순히 머리에 뭘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선생님들은 내 여행의 가이드였다. 때로는 엄격한 여행사 가이드처럼 “이 길 말고는 없어!” 하고 몰아붙였고, 때로는 길가에서 같이 쉬어주는 동행 같았다. 특히 국어 선생님. 내가 글쓰기에 주저앉아 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글은 완벽할 필요 없어. 진실하면 돼.” 그 말은 정말이지, 깜깜한 밤바다 위에서 등대 불빛이 켜지는 것 같았다.
물론, 길을 잃은 적도 많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진로를 못 정해 방황했던 겨울. 친구들은 다들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아 울적했다. 솔직히 그때는 “다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떠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그 방황 속에서 알았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걸. 때론 헤매는 게 더 많은 걸 보게 해준다는 걸.
실패도 있었다. 첫 발표 날,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목소리가 덜덜 떨리더니 단어가 툭 끊겨버렸다. 교실이 정적에 잠겼고, 얼굴이 화끈거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굴욕적인 순간이, 이후 내 발표 습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늘 한 번 더 준비하고,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었다. 결국 실패가 내 발걸음을 단단하게 만든 셈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믿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졸업장을 쥐었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그때마다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끝났다!” 그런데 아니었다. 매번 그 뒤에는 더 큰 산, 더 낯선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식 날 학사모를 던지며 환호했지만, 눈앞에는 사회라는 어마어마한 대륙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돌아보면, 배움이라는 여행은 늘 그렇다. 끝난 줄 알면 시작이고, 헤매다 보면 길이 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려도, 심지어 돌아가도 괜찮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길이라는 걸 배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여행자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낯선 관점을 받아들이며, 또 다른 길 위에 선다. 다만 예전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웃으면서, 조금 더 여유롭게,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
배움이라는 여행이 내게 남긴 건 단순하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가 오늘도 내 발걸음을 앞으로 내민다. 가방 하나 메고, 또 다른 길 위에 서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