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마셍이라 말하며, 용기를 배웠다

by 코난의 서재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건 멋진 계기나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여행 중 메뉴판 하나 읽지 못해 밥 한 끼조차 제대로 주문하지 못한 순간,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도 다음엔 혼자 시켜볼 거야!”라는 오기가 공부의 출발점이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다. 히라가나를 하루 만에 다 외우겠다고 선언했지만, 노트는 ‘あ, い, う…’로 도배된 채 머릿속은 여전히 백지였다. 발음을 따라 하다 보면 ‘아리가토’와 ‘아리까또?’가 뒤섞여 혀가 꼬였고, “역시 너무 늦게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찾아왔다. 특히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입을 열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틀릴까 봐 두려워하다 보니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전환점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여행 중 편의점에서 더듬거리며 “코-히-”라고 말했는데, 점원이 알아듣고 커피를 건네주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날 단어장에 괜히 별표를 세 개나 그려 넣었다. 또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은 일본인 관광객에게 용기를 내어 서툰 일본어로 길을 설명해드린 적도 있었다. 문법은 엉망이었지만 손짓과 표정까지 더해져 소통이 되었고, 고맙다며 웃어주시는 그분의 얼굴이 오래 남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본 음식점에서 서툰 발음으로 주문하고, 일본인 친구와 메신저 대화를 이어가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간판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막 없이는 단 한 글자도 알아듣지 못하던 일본 드라마가 어느 날은 반쯤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기쁨은 마치 긴 달리기 끝에 숨이 턱 막히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지금은 JLPT 2급을 준비하며 여전히 긴 문장 독해와 청해에 애를 먹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안 되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이 과정도 성장의 일부야’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すみません’을 ‘스미마셍’이라 발음해 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웃음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아, 또 한 발자국 나아갔구나” 하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언어를 배우며 예상치 못한 길이 열렸다. 처음엔 메뉴판 읽기가 목표였는데, 지금은 일본의 작은 서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책을 고르는 시간이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쓴 책을 일본어로 출간해 일본 독자들과도 마음을 나누고 싶다. 나아가 일본어 실력을 살려 통번역 자원봉사에도 참여하며 누군가의 다리가 되어주는 일을 꿈꾼다. 작은 오기에서 시작된 공부가 이제는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내 삶을 더 멀리 확장시킬 새로운 가능성이 되고 있다.

돌아보면 일본어 공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단순한 언어 습득이 아니다.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태도다. 매일 조금씩 배우고, 실수하고, 다시 시도하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일본어뿐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만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진짜 배우고 있는 건 일본어가 아니라,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내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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