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천절, 나의 건국 이야기
나라에 개천절이 있듯, 나에게도 나만의 개천절이 있다. 누군가는 생일을 떠올리겠지만, 나의 개천절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바로 내가 처음으로 내 힘으로 무언가를 시작한 날이다.
처음으로 깃발을 꽂은 날은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쉽지 않을 거야." 그들의 염려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원고의 첫 문장을 적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그건 단순히 원고의 시작이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조용한 선언이었다.
새벽 3시,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던 날이 떠오른다. 지운 문장이 쓴 문장보다 많았다. 커피는 식었고, 커서만 빈 화면에서 깜빡였다. "이게 맞나?" 하는 의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신기했다.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건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원해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헌법, 자발성
책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고단했다. 때로는 한없이 외로웠다.
하지만 그 여정 속에서 나는 내 삶의 헌법 같은 가치를 발견했다. 바로 자발성.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시작하는 일은 달랐다. 흔들려도 버틸 수 있었고, 결과가 늦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라가 헌법을 지키며 존속하듯, 나 역시 이 자발성을 삶의 뿌리로 삼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진짜 자유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선택하는 데 있다는 것을.
두 번째 건국을 향하여
첫 번째 건국이 나만의 깃발이었다면, 이제 알았다. 진짜 울림은 '함께 세운 나라'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정답을 주는 나라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답을 찾아가는 나라를 세우고 싶다. 교육 현장에서 깃발을 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을 더 많이 마주하고 싶어서. 그 순간들이 모여야 우리 모두가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묻는다.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넌 어떻게 해보고 싶어?" "왜 하고 싶어? "학부모님들께도 "이렇게 하세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왜 하고 싶으세요?" 라고 건넨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그 순간이 좋다. 누군가의 눈빛이 살아나는 걸 보는 게 좋다. 내 작은 나라는 그렇게, 질문으로 확장된다.
글 속에서, 강연장에서, 상담실 낡은 책상 너머에서. 나는 조금씩 그 나라를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두려움보다 용기가 조금 더 앞서는 나라.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나라.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나라.
이것이 내가 세우고 싶은 두 번째 건국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깃발을 든다. 조금 떨리지만,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