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남겨진 책상.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연필을 쥔 손은 늘 조금씩 떨렸다.
‘조금만 더 잘해야 해.’
‘이 정도로는 안 돼.’
그 말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말보다 표정의 흔들림을 더 먼저 읽고,
말의 내용보다 어조의 진동을 먼저 느꼈다.
상대의 감정이 내 마음 한가운데로 거세게 밀려 들어오면
내 감정은 뒷전이 되었다.
상대가 불편하면 나도 불편해졌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내가 먼저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늘 내 마음을 돌볼 자리가 없었다.
불안과 완벽주의는 한때 나를 지치게 했다.
사소한 말실수에도 밤새 뒤척였고,
누구는 금세 흘려보낼 상황을
나는 며칠씩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 곱씹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불편했던 감정이 내가 자라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 시간,
한 아이가 울먹이며 고개를 푹 숙였던 날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씹어 삼키고 있는 마음의 모양을.
내가 예민했기에,
내가 오래 외로웠기에,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받아들였던 내가
그 아이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다.
가족과 부딪히던 날들에도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는지 들여다보았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나를 보호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게 아팠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조금씩 배웠다.
먼저 내 마음을 살피는 연습을.
감정이 들어오면 한 번 숨을 고르고,
‘이 감정은 누구의 것일까?’ 하고 자문하는 법을.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마음을 내 자리로 다시 데려오는 법을.
완벽해야 사랑받는다고 믿었던 시절에서,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온 건
내 안의 예민함과 불안이 나를 계속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안다.
예민함은 관계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감각이 되었고,
불안함은 멈추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완벽주의는 내 마음의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나침반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결국
내가 가장 불편해하던 부분 덕분에
누군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그 불편함마저
나를 움직이는 힘으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