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가나 오십음도표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이것이 내 인생을 얼마나 뒤흔들어 놓을지 전혀 몰랐다.
あ い う え お.
다섯 글자. 연필을 쥐고 노트에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획 하나하나에 힘을 줬다. 다 쓰고 나서 뒤로 물러나 감상했다. 뿌듯했다. 이 정도면 금방 외우겠는걸. 마흔일곱에 새 언어를 시작하는 거지만, 나름 학습 코칭 20년을 넘긴 사람이었다. 매일 아이들한테 "반복이 답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설마 오십음도 하나를 못 외울까.
그 자신감은 정확히 か행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さ행에서 완전히 박살났다.
し와 ち가 자꾸 자리를 바꿔치기 했다. そ는 쓸 때마다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ぬ와 め는 대체 어떻게 구별하라는 건지, 둘 다 실처럼 구불구불한 게 쌍둥이도 이런 쌍둥이가 없었다. 교재를 노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게 우리 학원 아이들이 영어 알파벳에서 b랑 d 헷갈려할 때 짓던 그 표정이구나. 내가 지금 그 표정을 짓고 있구나. 마흔일곱 살의 얼굴로.
밤 열한 시. 식구들이 다 잠든 거실에서 혼자 오십음도표를 펼쳐놓았다. 형광등 하나만 켜놓으니 노트 위로 길고 고요한 빛이 드리워졌다. 입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눈으로 훑었다. 감각이란 감각을 총동원해야 했다. 스무 살짜리 뇌가 아니니까. 마흔일곱의 뇌는 새로운 기호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달랐고, 한번 새긴 것도 하룻밤 자고 나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아이우에오, 카키쿠케코, 사시스세소......"
혼잣말로 읊조리는데, 방에서 남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다 말고 뭐 하는 거야?"
"공부."
"몇 시인데."
"열한 시 반."
잠깐 침묵. 그리고 방문이 다시 닫혔다.
나는 다시 연필을 들었다. た ち つ て と.
새벽 다섯 시. 화장실에 가려다 식탁 위의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쓰다 만 た행. 화장실도 포기하고 식탁에 앉았다. た ち つ て と. 세 번, 다섯 번, 열 번.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 조용한 새벽집을 채웠다. 화장실은 た행을 완주하고 나서야 갔다.
히라가나를 간신히 몸에 새겼더니 카타카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ア イ ウ エ オ.
히라가나의 쌍둥이 같으면서 완전히 다른 놈. き를 보면 キ가 떠오르고, キ를 보면 き가 생각나지 않는 기묘한 혼돈. 뇌가 두 개의 알파벳 사이에서 출렁거렸다. 김 서린 욕실 거울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썼다. ラ リ ル レ ロ. 뜨거운 물에 어깨를 담그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라리루레로, 라리루레로......"
벽 너머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옆에서 무슨 소리 나."
입을 다물었다가, 그러다 속으로 혼자 웃었다. 내가 왜 이웃집 눈치를 봐. 다시 중얼거렸다.
"라리루레로."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이어폰을 꽂고 유아용 일본어 오십음도 노래를 들었다. 발랄하고 경쾌한, 아이들 교육 방송에서 나올 법한 그 노래. 마흔일곱의 학습 코칭 전문가가 통근 지하철에서 유아용 노래를 무한 반복하는 장면이 스스로 생각해도 좀 웃겼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몸이 리듬을 기억하면 글자도 따라왔다. 이건 내가 아이들한테 늘 하는 말이기도 했다. 리듬으로 외우면 오래 간다고. 그 말이 이렇게 내 몸으로 증명될 줄이야.
그리고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한자. 아니, 일본어로는 칸지(漢字).
한국어를 쓰는 덕분에 한자 자체가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문제는 읽는 방법이었다. 하나의 한자가 훈독과 음독, 두 가지 이상의 읽기를 가진다는 것. 生이라는 글자 하나가 せい(세이)로도, しょう(쇼)로도, い(きる)(살다)로도, う(まれる)(태어나다)로도 읽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잠깐 진지하게 포기를 고려했다.
이건 하나의 글자가 아니라 사기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했다. 그날 밤 다이아몬드 에이스 2기를 틀었는데, 미유키 카즈야가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뱉는 장면이 나왔다.
"一球入魂(いっきゅうにゅうこん)."
한 글자씩 귀에 꽂혔다. 잇큐뉴콘. 한 공에 혼을 담는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막으로 읽는 것과 달랐다. 소리가 의미가 되어 피부로 스며드는 느낌. 아, 이거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거다. 그 몇 초의 짜릿함이 포기를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미유키 카즈야.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포수. 테라시마 타쿠마가 연기하는 그 목소리. 여유롭게 흘리는 듯하면서도, 마운드 위의 투수에게 던지는 한마디에 실리는 압도적인 무게감. 자막으로 읽으면 그냥 "던져봐"인데, 일본어 원음으로 들으면 그 안에 포수로서의 자존심과 도발과 신뢰가 전부 녹아 있었다. 그걸 자막의 번역 필터 없이 날것으로 느끼고 싶었다.
주술회전의 고죠 사토루가 한없이 가볍게 내뱉는 말 속에 숨겨진 서늘함. 겁쟁이 페달에서 오노다 사카미치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숨 넘어가게 흥얼거리는 애니메 주제가. 약사의 혼잣말에서 마오마오가 독에 대해 읊조릴 때의 그 담담하고 집요한 어조. 나의 행복한 결혼에서 미요의 떨리는 고백.
이 모든 것이 "일본어를 알아야만" 진짜로 들리는 것들이었다.
자막은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온도는 전달하지 못한다. 나는 온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외웠다. 미친 듯이.
교재만 붙들고 있으면 졸렸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애니메를 교재로 삼기로 했다. 자막을 끄고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들리는데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어 자막으로 바꿨다. 귀로 듣고, 눈으로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일시정지를 누르고 사전을 뒤졌다. 스물네 분짜리 에피소드 하나를 보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겁쟁이 페달에서 오노다가 자전거를 타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한 장면에서 단어 세 개를 건졌다. 주술회전에서 이타도리 유지가 "死ぬ時は独りだ(죽을 때는 혼자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死(し)의 용법을 배웠다. 약사의 혼잣말에서 마오마오가 약재 이름을 줄줄 읊는 장면에서는...... 그냥 넘겼다.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 약사들도 헷갈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위로가 됐다.
어느 새벽, 남편이 물을 마시러 나오다 나를 발견했다.
"또야?"
"응."
"몇 시인데."
"두 시? 아니, 두 시 반."
남편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식탁 위에 낯선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일본어 단어장 앱이 설치된 채로.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세팅해 놓은 거였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말로는 "또야?"라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항상 나를 밀어준다.
아이들도 슬슬 끌려왔다. 아들이 먼저였다. 내가 겁쟁이 페달을 보면서 단어를 끙끙대며 받아쓰고 있으니까, 옆에 와서 슬쩍 보더니 한마디 했다.
"엄마, 그거 がんばれ잖아. 힘내라는 뜻이야."
아니, 이걸 어떻게 알아?
"게임에서 맨날 나오는 건데."
게이머 아들의 일본어 실력이 교재 한 권보다 나을 때의 그 복잡미묘한 심정이란.
어느 날 새벽 네 시에 눈을 떴다. 볼이 뭔가 뻣뻣했다. 손에는 단어장이 쥐어져 있었다. 거울을 보니 볼에 글자가 찍혀 있었다. 잠들면서 얼굴로 눌러버린 ま행. 반대로 새겨진 글자들이 볼 위에 선명했다.
거울 앞에서 한참 웃었다.
마흔일곱에 단어장을 베개 삼아 자는 여자. 수능 앞둔 수험생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이상한 건, 전혀 괴롭지 않다는 거였다.
수능 때는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일본어 한자를 외우면서 웃음이 났다. 차이는 딱 하나였다.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였다. 미유키의 대사를 알아듣기 위해, 고죠의 농담에 자막 없이 웃기 위해, 마오마오의 독백을 날것으로 느끼기 위해 하는 공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공부.
그래서 새벽 두 시에도, 세 시에도, 볼에 단어장 자국을 찍어가면서도 행복했다.
20년 넘게 학습 코칭을 하면서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말해왔다.
"공부는 동기가 전부야."
그 말을 가장 뼈저리게 실감한 건, 강의실이 아니라 새벽 거실 소파 위에서였다. 볼에 ま행을 새긴 채.
다음 목표가 생겼다. JLPT N3 시험 접수. 포수 미유키가 사인을 내밀 듯, 나도 나 자신에게 사인을 보냈다.
던져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