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이상하게 허기가 졌습니다. 분명 비싼 밥을 먹고 좋은 차를 마셨는데, 마음은 텅 비어 있고 몸은 '뼈까지 피곤'했거든요.
기분이 나쁜 것도, 대놓고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다 내 탓인 줄 알았죠. '내가 너무 예민한가?', '좋은 사람인데 왜 나만 이 모양일까?' 미안한 마음에 더 잘해주고, 더 맞춰주고, 더 웃어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애를 쓰면 쓸수록 나는 자꾸만 '먼지'처럼 작아졌습니다.
그 사람은 명백한 악당이 아니었습니다. 욕을 한 것도, 주먹을 휘두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화 끝엔 늘 은근한 가시가 남았습니다.
"너는 참 그렇더라." "그래서 네가 아직 그 모양인 거야." "나라면 절대 그렇게 안 했을 텐데."
상처는 입었는데 증거가 없었습니다. 아프다고 말하면 오히려 "넌 뭘 그런 걸로 상처를 받니?"라는 핀잔이 돌아왔죠. 내 감정인데도 자꾸 검열하게 되더군요. 내가 문제인 건지, 내가 정말 이상한 건지.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독(毒)은 꼭 쓴맛이 아니라는걸요. 설탕처럼 달콤한 독도 있고, 향기조차 없는 무취의 독도 있었습니다. 천천히 스며드는 독은 무서운 게, 아프기 시작했을 땐 이미 온몸에 퍼진 뒤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했냐고요? 드라마처럼 "다시는 보지 말자!" 하며 물을 끼얹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아주 천천히 '거리'를 두었습니다. 연락을 조금 늦게 확인하고, 약속을 한 번 더 거절하고, 내 속 이야기를 한 뼘 덜 꺼냈습니다. 폭발적인 이별은 없었지만, 고요한 거리가 생겼죠.
처음엔 죄책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 사람은 잘못이 없는데, 내가 너무 냉정한 건가?' 그때 한 친구가 제게 물었습니다. "근데 너, 그 사람 만나고 나서 단 한 번이라도 행복했던 적 있어?"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요. 그건 관계가 아니라 '의무'였고, 우정이 아니라 '노동'이었습니다.
이제야 압니다. 관계를 정리하는 데 거창한 사유가 필요 없다는 걸요. '만나고 나면 자꾸 피곤하다.'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어도, 내게 피해를 주지 않았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나랑 안 맞는 사람일 뿐입니다. 몸에 안 맞는 음식을 먹으면 체하듯 말이죠.
요즘도 가끔 연락이 옵니다. 예전처럼 반갑게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죠? 예전보다 답장은 뜸해졌는데,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좋은 사람' 같습니다. 마음엔 여유가 생겼고, 눈빛은 더 따뜻해졌으며, 무엇보다 '나다움'을 되찾았거든요.
당신에게도 혹시 이유 없이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나요? 그 느낌, 절대 틀린 게 아닙니다. 당신의 세포가 먼저 신호를 보낸 거고, 당신의 영혼이 먼저 알고 비명을 지른 거예요.
독이 되는 관계를 솎아내는 건 차가운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나를 살려내는 작업입니다. 내가 살아야 내 곁의 '진짜' 사람들에게 온전한 온기를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맞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입니다. 마흔이 넘어서야 배운, 쓰지만 달콤한 인생의 법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