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하는 느낌이 시기 질투라는 이름으로

by 코난의 서재



솔직히

나 요즘 질투한다.

이 나이에. 이 경력에. 이만큼 쌓아놓고.

스무 살 때 질투는 단순했다.

쟤가 나보다 예쁘다. 쟤 다리가 더 길다. 쟤는 살을 먹어도 안 찐다.

그때의 질투는 뭐랄까, 순수했다. 아니, 솔직히는 유치했다. 근데 유치하니까 가벼웠다. '에이, 뭐' 하고 털어낼 수 있었다.

서른이 되니까 질투의 대상이 바뀌었다.

쟤는 결혼을 잘했네. 쟤 남편은 다르네. 쟤는 집이 넓네. 그땐 남의 인생이 내 인생의 정답지처럼 보였다. 쟤처럼만 살면 되겠다 싶은 그 막연한 기준. 지금 생각하면 그 기준이 내 거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마흔이 훌쩍 넘었다.

이제 질투 같은 거 없을 줄 알았다.

아니더라.

며칠 전이었다.

내가 25년 넘게 해온 분야. 남들이 나한테 물어보러 오는 분야.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고, 솔직히 이 바닥에서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 싶은 그 분야.

근데 막 시작한 누군가가 그 문 앞에 서 있는 걸 봤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사람. 경력도 얕고 아직 서툰 사람.

그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그 사람이 너무 아는척 하면서 이야기하는게 너무 거슬렸다

다른건 괜찮았다 내가 보람차게 열심히하고있는 분야가 아니었음 상관없었을수도 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꾸물꾸물 올라오는 게 있었다.

이름 붙이기 싫었는데.

질투였다.

진짜 웃긴 거 알아?

난 오랫동안 갈고 닦고 힘둘게 이자리에왔는데..

이건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경험도 많고 실력도 있고 쌓은 것도 많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 질투는 그런 거 안 따진다. '네가 더 낫잖아'라고 아무리 스스로 말해봐야, 꾸물꾸물은 이미 올라와 있다.

질투라는 이름안에는 내가 열심히 해왔던 분야를 무시하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내가 나이 드는 게 두려운 건가.

20대 질투는 외모였다.

30대 질투는 조건이었다.

40대 질투는... 뭐라고 불러야 하지.

나는 이걸 '자리 질투'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일군 자리. 내가 버텨서 만든 자리. 근데 그 자리에 누군가 가볍게 올라오는 것 같을 때 느끼는 그 감정. 억울함 같기도 하고, 조급함 같기도 하고, 그냥 싫다 싶은 감정.

내가 이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어렵게 힘들게 왔는데..무언가 이 분야를 그냥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하는 지인을 보면서 ..왠지 그 시간이 허무한것처럼 느껴지면서 ...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거 안다.

근데 있다. 분명히.

친구한테 털어놨더니 걔도 그랬다고 했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근데 말하기 창피해서."

맞다. 이게 창피한 거다. 마흔이 넘어서 질투한다고 하면 뭔가 못난 사람 같고, 그만큼 살았으면 이제 다 내려놔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근데 내려놓는다는 게 그게 없어진다는 게 아니더라.

그냥 들여다보는 거더라.

아, 나 지금 억울하구나 질투라는 이름을 붙잡고

나 지금 뭔가 놓치는 것 같아서 불안하구나. 나이 드는 게 아직 무섭구나.

그 꾸물꾸물한 감정한테 이름을 붙여주는 것.

그게 마흔 넘어서야 조금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없애는 게 아니었다.

들여다보는 거였다.

그게 어른이 되는 거였나 보다.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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