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와 묘수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신념 사이의 흔들림에 대하여

by Concept Varia

수신인: 단기적인 성과와 장기적인 신념 사이에서, 더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는 우리 모두에게


대표 문장: “철학 없는 묘수는 꼼수다.”


편지 도입부: 하루의 소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입니다. 빠르게 스쳐 가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오늘 있었던 납품업체와의 대화를 곱씹습니다. '질은 더 좋은데 가격은 싼 수입산 고기.' 효율과 이익만 생각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죠. 하지만 그 순간 제 안에서 무언가 멈칫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과의 충돌이었습니다. 단기적인 성과냐, 고독한 '결단'이냐. 당신의 삶에도 분명 이런 갈등의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그 선택의 무게에 대해, 이 어두운 차 안에서 홀로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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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화


A: 수입산인데 고기가 정말 좋아요, 싸기도 하고,

요즘 국내산 너무 비싸서 힘들어요.

B: 그래도,,,

C: 그렇게 해요. 아무도 몰라요.

원산지만 표시하면 되죠 뭐.


아주 오래전 대화


A: 그냥 대충해, 그거 하다보면 대충 어떻게 되겠지 뭐.

B: 그래도,,,

C: 그렇게 해요. 피곤해, 빨리 소주 한잔 하러 가죠.


아직도 계속 되는 대화


A: 빨리 빨리 해야지 뭐해.

B: 아, 정말 이거 할게 너무 많아요. 찾아 볼 것도 많고, 이건 저 쪽에서 자료를 줘야 하는데.

C: 그냥 알아서 해. 그런다고 별거 없어. 다 똑같아.

D: 너무 원칙주의로 하면 우리 힘들어야. 왠만하면 그냥 넘어가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방식이고, 탐구이다.

그래서 고독한 결단이 필요하다. 바둑에서 말하는 승부수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바둑에는 사활이 걸린 묘수풀이가 공식처럼 있겠지만 삶이란 현장에서는 묘수풀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그것은 나만의 철학, 나만의 가치관, 나만의 기준선이 있을 때 가능하고 발현된다. 그것이 없을 때 묘수는 꼼수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흔히 ‘임기응변’을 능력이라 말한다. 급박한 순간에 재치 있게 상황을 모면하고, 당장 눈앞의 난관을 피할 수 있는 지혜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진짜 해결이 아니다. 시간을 벌어줄 뿐 문제를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임기응변이 아니라 결단이다. 결단은 순간의 재치가 아니라, 나 자신이 세워둔 철학과 가치관, 그리고 기준선을 근거로 내리는 고독한 선택이다. 그 결단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잘못 두면 돌 하나로 판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면 더 큰 패배가 기다리고 있다. 삶에서는 때때로 바둑의 승부수와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바둑은 흑과 백의 돌로 구성된 유한한 판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이다. 그 안에는 정석이 있고, 묘수풀이가 있고, 경험으로 누적된 공식 같은 해답이 존재한다. 삶은 무한하고, 변수가 끝없이 개입하며,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삶에서 묘수풀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공식은 없다. 길은 없다. 단지 내가 만들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내 답을 만드는 일이다. 그 내 답이 발현되려면 반드시 내 철학과 가치관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을 때 묘수는 꼼수로 전락한다. 꼼수는 순간에는 유용해 보이나 결국 나를 배반한다. 꼼수는 나를 살리는 듯하다가 더 깊은 함정으로 데려간다.

임기응변이 거듭되면 순간의 난관을 덮고 넘어가는 데 집중한다. 결단은 표면을 넘어, 근본을 겨냥한다. 임기응변은 시간을 벌고, 결단은 길을 만든다.

임기응변은 늘 군중 속에서 환호받는다. 재치 있고 빠르며,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결단은 고독하다. 누구도 박수를 보내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비난과 조롱이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결단은 그 고독 속에서 자기 철학을 시험하고, 자기 가치를 증명한다. 그것은 나를 잠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삶은 바둑과 닮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혀 닮아 있지 않다. 바둑판 위에는 판세를 바꿀 한 수가 있다. 그러나 삶은 공식이 없다. 나만의 방식으로만 풀어야 한다. 나만의 철학, 나만의 가치관, 나만의 기준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늘 남의 해법을 빌려 쓰고, 남의 묘수를 흉내 내다 결국 꼼수로 무너진다.

철학은 화려한 것이 아니다. 거창한 것도 아니다. 내가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에서 멈추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선이다. 그 기준선이 있을 때, 결단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결단이야말로 삶을 한 걸음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 된다.

임기응변은 묘수와 꼼수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그러나 묘수가 꼼수로 전락하는 순간은 언제나 철학이 부재할 때다. 철학 없는 묘수는 꼼수다. 가치관 없는 해법은 편법이다. 기준선 없는 응급처치는 눈속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문제를 푸는가?
나는 어떤 철학 위에서 결단을 내리는가?
내가 두는 한 수는 묘수인가, 꼼수인가?

결국 문제를 푼다는 것은 나만의 답을 만드는 것이다. 정답은 없다. 해답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삶은 늘 현장이고, 현장은 언제나 처음이다. 그래서 결단은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 위에서만 진짜 답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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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응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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