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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택 Mar 09. 2018

내 꿈은 작가였다

낭만적인 소설을 적는 소설 작가였다

내 꿈은 작가였다

데이원 비즈라는 매거진에 각종 사업계획 관련 내용만 올리고 있지만, 사실 필자의 꿈은 작가였다. 그것도 매우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적는 소설 작가, 가끔은 마음과 마음 사이의 간극을 보살피는 수필작가,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타인과 공감하는 시인. 이 모든 것이 내 꿈이었다. 


싸이월드 시절에 썼던 일기가 1000개가 넘고, 사진과 시를 접목한 콘텐츠도 수백 개가 있다. 이제는 옛날 옛적 사이트이지만 작가네트라는 곳에서 곧잘 글을 써왔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현대문학과 고전시를 좋아했고, 서양보다는 동양철학을 더 좋아했다. 물론, 그 시절의 무협지인 영웅문 등의 시리즈 때문이기도 하다. 


통계학과 입학, 그리고 국문과 졸업


통계학과를 입학하고 우여곡절 끝에 국문과를 졸업했다. 지방에서 초중고를 다니고 대학 역시 지방에서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에겐 서울은 참 머나먼 나라였다. 서울말을 들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던 그런 여느 지방 학생과 같았다. 그래서 내 입에서 서울말스러운 언어가 튀어나올 때면 소름 돋기도 한다.  


통계학과가 좋아서 들어간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당시에 컴퓨터를 좋아했는데, 그 학과 이름이 지금은 통계학과지만 그 당시에는 아예 다른 이름이어서 입학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들어가서는 술과 사람을 주야장천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그냥 시답지 않은 소설을 쓰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갔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문학과로 과를 바꾸고 글을 더 사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문학과는 문학과 어학을 배우는 학과. 어학은 나에게 쥐약이었다. 


만일 교육대학원을 간 뒤, 그곳에 살았다면


서울 생활이 고달파서인지, 제안서 쓰기가 너무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당시 대학에서 국어국문으로 교육대학원을 입학 한 뒤, 그곳에 그냥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친구들과 계모임을 하는데 친한 친구들이 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고, 그곳에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이제 친구들의 애기들, 조카가 몇 명인지 모르겠다. 


사업계획서, 논문, 제안서와 같은 글을 쓰고 있다 보니... 그곳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그저 그런 글을 써 오며 살았으려나, 아니면 정말 재미있는 글을 써서 네이버 웹소설 작가라도 하고 있을까. 사진에 한창 취미가 있었으니... 혹시 새로운 콘텐츠로 다른 사업을 하고 있으려나...


어쨌든, 지금도 내 삶과 밥벌이의 일부가 글인 만큼 그곳에서도 이렇게 타이핑을 치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이 아파온다. 허리도 아파오고. 아무튼... 참... 제안서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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