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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택 Jun 11. 2018

세상에 화려한 업무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게 된다

세상에 화려한 업무는 없다

예전에 영화, 광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짜고, 스크린에 걸릴 영화에 서포트를 하면서 커다란 커리어를 만들어야지 하고 바랬던 기억. 그곳에 발은 들여놓지 못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니 든 생각. '이게 다가 아닐 거야. 내가 아직 그 위치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 거야'


1년, 2년 나이를 먹고 소위 큰 기업이나 지자체, 정부기관이랑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들과 일을 하고, 사회적으로 뱐향이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든생각이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와 '세상에 화려한 일은 없구나'라는 것이었다. 모든 일들이 다 아이디어를 짜고, 토론을 하고, 타이핑을 하고,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조업 분야도 마찬가지. 애플이든 삼성이든 초일류 기업에서 나오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어차피 판때기를 접합하는 것이고, 공정과정을 검토하고, 쭉쭉- 지나고 나서, 판매하게 되는 것. 단지 그뿐이다. 

(*물론, 그 사이에 들어가는 많은 노력들은 안다. 하지만 이 글은 노력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화려하게 만들어진 프로모션 PPT
하지만 결국 한 땀 한 땀 따져보면 막일


한 7~8년 전에 만든 공모전 PPT를 다시 본 적이 있었다. L이라는 회사의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한 프로모션 방향을 잡는 내용이었는데, 찬찬히 훑어보니 참 많은 사람이 투입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실제로 진행하면 어느 정도 인력이 들어갈까'


일단 영업전선에서 설득하는 과정도 있을 것이고, 제안서 작성 작업도 해야 하고, 연예인 섭외를 위해서 해당 기획사와 미팅도 해야 한다. 뭐 이 정도면 나름 화려한 것이다. 만들어진 페이퍼 재본 작업, 상사로부터 듣는 오탈자 수정이라던가, 테이블 정리, 가끔 쓰레기통도 비워야 하고, 구린내나는 양말로 밤샘 작업도 해야 한다. 


갑 쪽에서 웃으며 "다시 해와주세요."하면 다시 해야 하고. 썩은 미소라도 지으면서 뒤돌아 서야하고. 


영상제작팀이라던가, 야외 프로모션 팀들은 소위 'The 개고생'이다. 촬영팀은 카메라부터 무겁다. 편집실은 수십 개의 파일을 보고 자르고 맛보고 붙인다. 


아무튼 100명이 넘는 사람이 고생하고나야지 비로소 화려한 프로모션 영상이 나오고, 오프라인에서는 나름 이쁜 무엇인가가 진행된다. 


결국 자긍심이나 버티기 밖에 없는 건가


최악의 실업난 시대. 그래도 사람들은 이 화려하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하게 된다. 마치 회사 대표가 된 것처럼 제안서를 만들기도 하고, 실제로 창업을 해서 각종 서류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서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난 쓰래기를 양산하지 않았나 하고 반성한다)


이런 화려하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 자위할 발판은 '자긍심 혹은 버티기' 밖에 없을까. 영화 분야 작가가 굶어 죽는 일도 생기고, 아직도 연극판에서는 최저임금은 기대할 수도 없으니. 그 분야는 진짜 자긍심과 즐기심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밥을 먹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혹은 나만의 자긍심.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괜찮아요. 당신은 화려합니다. 이 말을 내 주위에 하라


연예인의 화려함. 이들이 화려한 이유는 이들을 화려하게끔 만들어주는 팬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을 화려하게 보이게 하려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화려해야 하고, 그들이 나를 화려하다고 말해줘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오탈자를 고치는 일이라도, 책상을 닦고 서류를 정리하는 인턴일지라도, 내가 하지 못하는 디자인을 해주는 신입 직원이라면, 생각해보면...


내가 하기 싫은 일, 내가 하지 못하는 일, 내가 하기 귀찮아하는 일. 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나의 화려함을 만들어주고, 내가 그들을 반드시 화려하다고 여겨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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