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에 생각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하늘은 푸르고 솜사탕 같은 구름이
깃털처럼 흐르고 있다.
구름 한 점 한 점이 삶과 닮았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평상시에 침침한 눈도 웬일인지 맑음이다.
책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은 전형적인
노안인데 오늘은 책의 활자가 눈에 잘 들어온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나는,
그런 신체적 변화와는 별개로 일상에서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나 자신도 노년기에 접어들었구나 하고
한숨을 짓는 시간이 늘어갔다.
예를 들자면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현상이다.
휴대폰, 작은 메모수첩, 사물함 열쇠 등
거기에 더해 좀 전에 떠오른 좋은 문장 하나도
즉시 옮겨 적지 못하면 그냥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요즘은 내가 무언가를 찾고 있으면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럴 땐 진정 내가 나인지도 그 정체성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도 많아졌다.
나이 들수록 몸과 마음이 더 성숙해져야 할 텐데
실상은 스스로 화를 잘 내며 나를 궁지로 몰고 가는
자의적 학대를 저지르기도 한다.
50대의 나이에서는 고령자를 남 생각하듯
타자로 취급하였지만 지금은 나에게 닥쳐온
늙음이라는 낯섬이 또 다른 타자가 되어
나의 자존감과 맞닥뜨리고 있다.
이제 초로의 세대에 접어든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은퇴를 하고 인생의 가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은 겨울의 문턱에서 내 인생의 가을을 생각하며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늙음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