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물다 간 자리, 녹슨 닻의 침묵

포토에세이

by 희망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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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의 하늘이 조금씩 여명으로 물들어간다.

바다는 물러난 바닷물 대신 잿빛 갯벌을 수줍게 드러내고.

마치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거대한 휴식처 같다.


바다가 시작되는 차가운 콘크리트 선착장 위에

묵직한 닻들이 잠들어 있다.


붉게 물드는 시간의 흔적.

닻의 몸뚱아리에 피어난 붉은 녹은 거친 파도와 싸우고,

바다 밑바닥의 어둠을 견뎌온 시간의 훈장이다.


한때는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닷속에 몸을 던졌지만

이제는 뭍으로 올라와 붉은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어쩌면 멈춤이 아닌 다음을 위한 기다림이 아닐런지.


일몰 직전의 태양이 마지막 빛을 모아 닻에게 비추듯,

이들에게 지금의 정적은 끝이 아니고 다시 찾아올 만조를

준비하는 고요한 응축의 시간이다.


우리 삶의 닻은 어디에 있을까.

내 삶을 지탱하던 닻은 지금 어느곳에서 붉은 숨을 쉬고 있을런지.

시간이 묻어난 닻의 거친 표면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치열하게 살아온 어제와 다시 시작할 내일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무는 해를 등지고 갯벌의 짠 공기를 호흡하는 저 닻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지혜를 배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이의 몸에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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