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라 늦잠을 자다가 깨었다.
창문을 여니 오후에 온다 던 비가 아침부터 주적주적 내리고 있다.
아마도 하루 종일 내릴 듯싶다.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신 김치를 듬뿍 넣은 김치전에 막걸리를 한 사발 하고 싶어 진다.
슬그머니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친구를 떠 올려본다.
그리고 그뿐이다.
주말이지 않은가.
한 주 내내 이런 일로, 저런 핑계로 스트레스와 음주에
시달렸을 피곤한 몸을 편히 쉬게 할 나만의 시간.
아침에 일어나 습관적으로 열어 보는 핸드폰,
문자 한 건이 도착해 있다.
친구의 부친이 어젯밤에 돌아가셨다는....
연식이 오래된 나이들이라서 부모님을 보내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벌써 이 달만도 세 번째, 부모 세대의 종말을 알리는 의식의 주기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병원 영안실을 찾아 문상을 다녀왔다.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고 산 자는 분주했다.
늦은 밤이었어도 문상객이 많아서 무척 북적이는 모습이
드문드문 비어 있는 빈소의 측은함과 대비되어 흐뭇함과 함께 부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문득, 문상객의 숫자와 평소의 삶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이런 물리적 지표가 우리의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보여주는
기준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선 말이다.
부모의 상은, 자식인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일상 속에서 기꺼이 문상을 와준 친구의 숫자를 확인하고 상주는 위안을 받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외면한 친구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어쩔 수 없이 나약해지는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우정이 크지 않으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숫자로 파악하는 우정의 양이 세속적이기는 하나 우리가 모르는
행복지수의 다른 표현이 되고 있다.
오늘도 또 다른 친구를 위해 문상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주말의 여유로운 시간을 친구와 공유해야 하지 않겠나.
다행히도 비 오는 날의 술 생각을 접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