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속의 시간
펜션의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가거도항은 아름다웠다.
목포항에서 출발하여 기나 긴 시간을 선상에서 멀미와 싸웠으니 앞으로 2박 3일간의
여정은 육지를 떠나 온 나에게는 오히려 이 섬이 고향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멀미로 지친 심신을 짧은 낮잠으로 풀어주었다.
섬의 날씨는 대체적으로 흐림이다.
듣기로는 가거도의 날씨는 예견할 수 없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변할 수 있고 일 년을 통틀어서 쾌청한 날씨는 손꼽을 정도라 하니
큰 기대 없이 섬에 들어왔다.
육지에서 출발하기 수일 전부터 섬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검색해 본 가거도는 알면 알수록 관심 안의 섬이 아닌
미지의 섬으로 다가왔다.
사실, 2박 3일의 일정으로 가거도를 알고자 한다면 무리이지만 섬에 도착한 이상 목포항에서
챙겨 온 관광안내 리플릿과 섬주민에게서 얻은 정보로 효율적인 일정을 짜보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섬들이 그렇지만 섬마다의 고유한 지형과 역사와 문화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섬의 기본 정신은 시간에 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에 맞게 사는 법을 알고 있다.
느릿한 삶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멈추어 생각하고, 감상하면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의 수면으로 정신을 차린 나는 섬의 지형과 탐방 구간을 살펴보았다.
모두 7구간이 있었는데 첫날이니 펜션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에 트레킹이 가능한 2구간을 선택하였다.
마을에서 출발하여 회룡산을 거쳐 섬등반도를 종점으로 기획된 구간이다.
배낭을 꾸리고 2구간의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출발부터 만만치 않은 트레킹이 예상되었다.
섬의 대부분 구간이 경사의 난도가 있고 콘크리트 포장도로여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박타박 충격이 올라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고도에 올라오니 특유의 탁 트인 바다풍광과
눈부신 윤슬, 점점이 흘러가는 구름조각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자니 어느덧 섬등반도가 있는 항리마을 초입에 다 달았다.
다행히도 언덕 아래에 작은 전망데크가 있어서 잠시 쉬기로 한다.
뷰가 미쳤다. 할 말을 잊게 만든다.
구름사이의 빛 내림 현상으로 수면의 윤슬이 붉게 물들고 있다.
항리마을이다.
불과 몇 가구가 살고 있는 가거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가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등반도를 끼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평일이어서 인적이 없다.
강렬한 붉은색의 대형 우체통이 마을의 수호신 같다.
지금 이 순간 이 우체통에 엽서를 넣는다면 내가 돌아간 육지에서 받을 수 있을까?
마치 천천히 흐르는 섬의 시간이 우체통 속에서 흘러가는 듯하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육지에서 아둥대던 나는 없고 섬의 속살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덧 해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곧 어둠이 밀려올 것이기에 불안하기는 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눈물 나게 아름다운 순간의 시간만을 붙 들고 싶었다.
섬등반도에 지는 해를 보며 시간에 쫓기 듯 살아온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륙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가거도에서의 첫날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