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과 일출 사이에서

아직 내 인생은 알 수가 없다.

by 희망열차


야간근무에 투입되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되어 다음날 오전 8시에 끝이 나는 장장 14시간의 근무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물론 휴게시간이 3~4시간 주어지는데 그 시간에 식사와 쪽잠을 해결해야 한다.

처음 들어가는 야간근무여서 전날 충분한 휴식으로 몸을 만들었다.


주간만큼 근로자들이 많지는 않았으나 야간에도 상당한 인원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물류센터라는 명성에 맞게 매일 처리하는 물량이 상당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도 빠른 배송의 매력 때문에 자주 주문을 하는 편인데 이렇게 물류현장 속에서 바라보니

더욱 실감을 하게 된다.

당장 급한 물건을 오후에 주문하여도 다음날 오전이면 문 앞에 도착해 있으니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총알 같은 배송시스템은 소비자에게 충분한 메리트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사원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주야로 쉼 없이 출근하는 그들에게서

삶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무더운 계절에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짐을 벗겨내는 악착같은 삶을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이 일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이다.


밤 10시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곳의 시간은 가늠할 수가 없다.

환한 조명 아래에 심야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분주한 사원들의 움직임,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주르륵 흐르는 땀을 곳곳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의 바람만으로 날릴 수 없는 열악한 작업환경.


그런 상황에서도 온라인상에서 수도 없이 찍히는 주문과, 동시에 해당센터의 출고파트에 뜨는 집품과

포장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상품은 배송을 타고 고객의 문 앞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도착한다.


한 시간가량의 야간식사를 해결한 사원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나도 정신이 빠지는 시간이다.

진땀이 흐른다.

등에서도 육수가 주르륵 흐름을 느낀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보이는 건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애매하게 놓친다.


한 단기직 사원의 출입증이 말썽이다.

몇 번을 갖다 대도 게이트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출입증을 임시출입증으로 대체하여야 할 사항이다.


이번에는 계약직 사원 휴대폰의 보안씰이 훼손이 되어 휴대폰 반입을 제지하였다.

반입규정 위반이다.

보안씰을 재교부하여야 할 사항이다.


시간이 흘러 다음날 오전 4시를 가리킨다.

사원들의 퇴근시간이 되었다.

피곤이 역력한 표정의 사원들이 흐느적거리며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현장에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든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대형 선풍기들도 그 순간 조용해진다.

보안대원들의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이다.

이 시간부터는 졸음과의 싸움이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잠에 빠진다.

그래서 사원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쫓기 위해 서서 한 시간을 버틴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잠을 털어내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동쪽으로부터

길게 드리우는 일출의 햇살을 보게 된다.


종료시간이 다가올 때 즈음 수십대의 셔틀버스가 꼬리를 물고 들어와

주간 근로자들을 쏟아낸다.


나의 치열했던 현재는 가고 또 다른 현재라는 하루를 맞이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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