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자연
독실산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여 가거도등대를 구경한 나는 다시 독실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독실산의 서쪽 능선을 타고 섬등반도로 갈 예정이다.
이미 오전 내내 강행군을 하여 지쳐 있었지만 호기롭게 등대에서 6구간의
종점이자 시점인 신선봉을 올라 섬등반도의 북쪽 방면으로 코스를 잡았다.
그리고 출발하였다.
이미 지나버린 일이 되었지만 경험상, 등대에서 다시 독실산을 오르는
신선봉까지의 구간은 극기 산행이었다.
원시림 속 험한 바위를 넘어서 계속 올라가야만 하는 코스이다.
설상가상, 생수마저도 보충을 하지 못하고 약 1시간 30분을 걸어야만 하였다
등대에서 물을 보충하지 못한 채 신선봉을 오르기를 약 40분, 축축하게 젖어 있는 기슭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위틈을 비집고 아주 작은 물줄기가 보였다.
빈 페트병에 샘물을 가득 채웠다. 갈증이 해소되었다.
독실산에서 발원하고 원시림을 통과한 물이어서인지 그 어떤 생수보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기운을 내며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신선봉에 올라 이번 트레킹의 대미를 장식할 미친 뷰를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다.
신선봉에서 6구간은 섬등반도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져서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구간마다 군락지 사이로 해안이 보이기도 했다.
신선봉에서 노을전망대와 섬등반도 사이의 구간(6구간)이다.
마침 쉬어가기에 적당한 공간도 있었다
섬등반도가 다가오고 있다.
1일 차에서 만난 섬등반도와는 또 다른 분위기이다.
날씨도 도와주었지만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뼈를 보는 듯한 남성적인 자태가 인상적이다.
항리마을을 품은 섬등반도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을로 진입하는 나무데크가 불안하게 이어져있다.
항리마을에 올라오니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파란 지붕과 이정표가 정겹다.
전날 날씨로 아쉬웠던 섬등반도의 풍경을 다시 천천히 감상해 본다.
섬등반도에 젖어드는 신비스러운 빛 내림과 윤슬.
그렇게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사이
바람이 목덜미 사이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경이로움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섬.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
가거도의 섬등반도를 뒤로 하고 대나무 숲을 지난다.
마음을 열고 바람이 전해주는 진정한 섬의 소리를 듣는다.
쉽지 않은 일정에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여 다행이었고 흔치 않은
가거도의 맑은 날씨도 피곤함을 잊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아침에 출발하여 약 10시간의 트레킹에서 인내를 배웠고 인생 후반기의 삶을 좀 더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점심을 거르고 걷고 걸었던 무리한 일정이었기에 한 컵의 물과 한 끼의 식사도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던 날이었다.
이날 저녁은 주인아주머니께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여 주셨다.
이런 소소한 행복과 감사함이 쌓이고 쌓여 하루를 시작하였고 그런 하루가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