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오전 4시에 맞춰 둔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인지 잠자리를 벗어나기가 어렵지 않다.
잠을 깨우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베란다 창가에 섰다.
차가운 새벽공기에 심호흡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올라온다.
하루의 일과를 여는 출근길을 달리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출근길의 도로는 물류단지로 향하는
대형 배송트럭들이 하루를 깨우고 있다.
항만에 조성된 산업단지에는 거대한 물류창고와 시설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24시간 물류차량들이 들고나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야간근무를 마친 대원들과 교대를 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부터 사흘 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어서 주간에 출근하는 사원들은
특근을 적용받는 날이다.
그래서 평일 출근하던 정직원이나 단기직원들 보다는 일반인들이
모두 쉬는 휴일을 선호하는 단기직들이 주류를 이룬다.
전날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싸늘한 포스트에서 고생한
대원과 인사를 나누며 교대에 들어간다.
나의 일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러나 현장은 24시간 가동이어서 주야로 근로자들이 들고나간다.
컨베이어벨트 라인도 쉼 없이 돌아가고, 주 야간 근로자들이 밀물과 썰물이
들고 빠지듯, 모든 현장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쳇바퀴 돌 듯 변함없이 흘러간다.
오직 정해진 시간 속에 노동만이 존재할 뿐, 불빛 아래에서 그들의 정신없는
손놀림과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흔들림만이 자욱한 먼지 사이로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어느덧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이 정신없이 흐르고 고단한
하루의 노동을 마무리하는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밖의 야드에는 이미 수십대의 셔틀버스들이 도착하여 오후조 사원들을
쏟아내고 퇴근자들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밤새 고생하였을 사원들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쉽지 않았을 노동이었음에도 밝은 표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반면에 그들의 퇴장에 검색으로 대응해야 하는 나는 잔뜩 긴장을 한다.
대부분이 젊은 층이지만 연식이 꽤 되는 남녀사원과 가족단위도 가끔씩 보인다.
퇴근시간에는 여유가 없다.
지친 몸을 추스르며 서둘러 셔틀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도 마음이 바쁘다.
검색이 임무인 보안대원이지만 퇴근할 때만큼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보탠다.
고생하셨다, 수고하셨다 하며
빨리 나가야 한다는 그들의 심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검색대를 통과한다.
그 순간이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검색대에 진입하면서 요란하게 알람이 울린다.
워낙 빠르게 통과하는 근로자는 검색대를 벗어났고
나는 의식적으로 그에게 집중한다.
가끔씩 나오는 단기직 사원으로 보이는데 나가는 걸음걸이가
어째 불편해 보였고, 그 순간 나만의 촉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뒤에 나오는 다른 사원을 잠시 세워두고 고민을 한다.
아직 뒤에는 수많은 사원이 있기에 너무도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침착하게 문제의 사원을 불러들였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사원을 한쪽에 대기시키고
일단은 나머지 인원을 통과시킨다.
퇴근 시의 사원들은 앞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여도 관심 밖이다.
빨리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꺼번에 몰린 인원을 처리하고 해당 사원을 다시 한번 검색대로 통과시켰다.
역시 검색대에서 붉은 깜빡임과 함께 알람이 울린다.
걸음걸이는 좀 전보다 더욱 부자연스럽다.
일단은 바지의 벨트가 확인이 되어서 넘어가려 하였지만
자꾸 사원의 발에 시선이 갔다.
사원들은 작업구역 내에서는 안전화를 착용하게 되어 있는데
제품별로 차이는 있으나 신발 앞부분, 발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철제 선심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검색대 하단 부분이 울리지만 좀 특별했던 걸음걸이가
자꾸 신경이 쓰인 것이다.
결국 사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발의 뒷부분에 핸드스캐너를 갖다 대었다.
울림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착용한 안전화가 확실히 어색하게 보인다.
나름 분명한 확신이 있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하고
신발을 벗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안전화에서 비교적 고가의 시계 두 개가 나왔다.
그 순간 본인은 물론이고 검색한 나 자신도 당황스럽다.
도리가 없다.
제품에 바코드가 있고 검색에 걸린 이상 해당 사원의 이름과
전화번호 공정 등을 확인하고 사진과 함께 반출위반 내용을 확보하였다.
해당 사원을 보내고 한숨을 돌린다.
당연히 보안대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한
기분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물론 일과 중 소소한 도난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말도 있듯이 소소한 것에 욕심을 내는 사원들도
더러 있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힘들게 일해서 한 순간에 자존감을 날리고 적색리스트에 올리면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는 일터와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모조리 잃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원들이 여름철 더위와 겨울철 추위를 감내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코 앞에서 바라보며 생생한 삶의 현장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에 나 자신도 더욱 자신의 삶을 위해
분발해야겠다는 의욕과 의지를 가다듬게 된다.
오늘 하루는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러운 도난사고로 마음이
어수선하지만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오늘을 준비하기 위해 어수선한 마음을 털어낸 뒤
일터를 나서는 길.
퇴근길 백미러는 붉게 물드는 노을로 가득 채워지고
이미 지나간 과거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수고했다! 오늘도
그리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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