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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니 보였다

포토에세이

by 희망열차




도시에 사는 나는 오랜만에 도시를 벗어나 바닷가 마을에 닿았다.


내륙에서의 삶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바둥거리고

잠시도 멈추지 못하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듯 살면서

마음 한편에 헛헛함을 달고 살았다.


아마도 이것은 현대인의 보편적인 정서 일 것이다.

그래서 도시를 벗어나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을 찾으며 탈도시화에

이끌리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한적한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바다 반대편 어항에 젖어드는 일몰이 일출 못지않게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움에 반하는 나의 걷기는 일상의 걸음과 다르지 않았다.

도심 생활의 속도를 잊고 편안하게 해안가의 흐름을 따라가야 했었다.


그렇게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고, 감상하며 때로는 멈추어 생각에 잠겼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가벼워 짐을 깨달았다.


어느덧 바닷가에 붉은 물감이 번지듯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헛헛한 마음은 충만해지고 점점 바다에 이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둑해지는 해안을 뒤로하고 마을로 되돌아가는 걸음.


가벼워진 나의 걸음 앞에 한 줌의 보랏빛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지나왔던 길인데 그때는 보지 못했던 꽃을,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

발걸음을 멈추니 보였다.


이제 삶의 한 순간, 멈추어 감상하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나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 야생화가 나에게 가르쳐 준 지혜를 가슴에 온전히 담아내어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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