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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Sep 07. 2022

세기말 그리고 세기초

검은 밤

아파트 옆집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지는 모른다.

한두 번 본 적이 있을 뿐.

그 집 대문 옆엔 항상 장면이나 짬뽕 그릇이 놓여 있다는 것만 안다.

굳이 알고 지낼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파트구나.

옆집에 어느 괴물이 사는지도 모르는...


복도 쪽 유리창을 열었다.

구미 3공단 밤의 정경이 펼쳐진다.

오늘은 퀴퀴한 약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필 아파트를 공단 옆에다 세운담...

하긴 그랬으니 임대료가 싸겠지만.


한국합섬 공장의 불빛이 보인다.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

김민기의 노래 <공장의 불빛> 생각난다.


"희뿌연 작업등만~"

"이대론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마을~"


공장 안 어디엔가 잠을 쫓으며 고향을 생각할

여공이 있을 거야. 별명이 '공순이'인...


Gustav Mahler

30만원짜리 싸구려 오디오에 말러 2번 음반을 올렸다.

번스타인 특유의 묵직한 소리.

세기말의 암울한 냄새를 물씬 풍긴다.

말러의 1800년대 말은 그렇게도 암울했던가?

이미 1900년대도 무사히(?) 넘겨버린 지금

희망의 2000년 뉴밀레니엄 이건만...

마치 세기말의 암울함이 어둠과 함께 짓누르는구나.


O Schmerz! Du Alldurchdringer!

Dir bin ich entrungen!

(오, 모든 사물에 스며있는 고통! 모든것을 멸하는 죽음)


말러 2번 교향 'Resurrection(부활)'의 finale가 끝나간다.

19세기 말의 지식인 말러가 노래한 고통.

21세기 초의 우리 앞에 놓인 이 고통은...


그냥 관념인가?

아니면 인간 근원의 물음인가?

건너편 한국합섬 기계 소음에 나의 물음은 묻혀버린다.



2000년 11월 29일 오전 01시

경북 구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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