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은빛 Sep 12. 2022

평생의 첫 만남-1

아기를 맞으며

비몽사몽[非夢似夢]...

전화가 울렸다.


"형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민이형.

'아, 게시판에 애 낳으러 간다고 써 놨었지'


"형 아들 낳았어요"

"축하한다"


축하전화에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저녁 8시 병원에 도착.


"아침이나 되어야 애가 나오겠군요"


몇 차례 상태를 살피던 병원장(개인병원)은

병원 건물에 딸린 자택으로 가버린다.


수중분만이니 그네분만이니 전통의 분만 방식을 벗어난 분만법이 사회적 관심이었다. 우린 '그네분만'으로 하기로 하고 출산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산모를 평평한 침대에 눕혀 놓고 간호사가 들락거리며 상황을 살필 뿐, 그네 얘기가 없다.


밤 11시 30분.


"아직 멀었어요. 아침 돼야 나올 겁니다~"


원장 선생이 했던 말이나 그게그거인 간호사 선생 설명이 이어졌다. '그네'얘기가 나오기만 기다리던 나는...


"저... 그네에는 언제 올라가나요?"

"네?! 그네분만 하기로 하셨어요??"


금시초문[今時初聞]이라는 듯 간호사 선생은 잠자는 원장 선생을 깨워오고, 그네분만대로 옮겨가고 분주한 절차가 이어진다.


"네 잘하고 계세요. 힘주세요"

"... 지금 팔십 프로 정도 진행이 되었네요. 곧 나오겠습니다"


아침이나 돼야 나온다더니...

순전히 산모의 힘으로만 애기를 나오게 하던 방식에 비해, 중력 도움을 받는 방식이라 출산 속도가 빨라지는 듯하다.


'안 물어봤으면 괜히 산모만 고생시킬 뻔했구먼. ㅠ'


갑자기 한밤 중 분만실에 긴박감이 넘치고, 의사 선생과 간호사 선생, 남편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그리고 개인 산부인과 분만실의 하나밖에 없는 산모의 신음 소리는 높아져간다.


보통 출산 때 산모가 고래고래 욕을 해 댄다고 듣곤 했다. 여동생은 출발 전에 '머리 다 뜯긴다고 조심하라'며 농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에 비하면 조용(?)출산이 진행되고 다.


01시 5분.

붉은 핏물이 쏟아졌다.

언제나 부른 배를 의지 삼아서 세상에 나오기를 꺼려할 것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 정말 나오는갑다.'

"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라"


끄덕. 끄덕.


"자. 애기가 보입니다. 이제 두 번만 더 힘주면 되겠어요"

"애기가 여기서 쉬어가려나 보네요"

 

원장 선생과 간호사 선생의 상황 설명이 이어지고, 마지막 산고[産苦]의 신음과 함께 최근 TV 다큐멘터리에서나 봄직한......

아기.

아기가 산도[産道]를 힘껏 벗어 나왔다.

머리카락이 보일 때만 해도 금방 나올 것 같지 않던 아기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를 산모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아들이었다.


"아빠가 탯줄 자르세요"

"네... 여기 하면 되나요?"


01시 20분.

아기를 바라보던 찰나 산모의 몸에서 태반이 빠져나오는 것을 끝으로 고통스러웠던 출산의 과정이 끝났다. 힘겨운 신음을 내뱉던 아내도 차차 진정되어 간다.




이제 나는 '아빠'가 되었다.

뭔가 인생살이 버전 1.0에서 2.0 이 된 듯한 그런 느낌...

그리고 아기는 세상의 시공간을 느끼며 힘차게 울어댄다.



2000년 12월

작가의 이전글 세기말 그리고 세기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