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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Sep 12. 2022

평생의 첫 만남 -2

뱃속에 넣고 있을 때가 편하다

그 녀석의 울음소리뿐.


모든 것이 재편[再編]되었다.

집안의 모든 유형무형의 구조물들은 모두 그에게 초점을 맞춰 활용가치가 재평가되었다.


너는 이 구석으로...

너는 이 앞쪽으로...


새 식구가 온다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며 정리해 둔 것들은, 그가 등장하던 그 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얼마 되지도 않아 보이는,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의 자그마한 옷가지들.

앙증스러운 젖병.

차곡차곡 정렬되어 있는 기저귀들.

이것들은 수시간에 걸쳐 정리정돈해 둔 집안의 이곳저곳을 점령해 나갔다.


그는 수틀리면 비장의 무기를 발동하였다.


"으.... 애~~~~~"


'으앙'아니고 '응애'도 아니었다. 이런 것들은 차라리 귀엽고 앙증스러운 느낌의 의성어였다. 그의 소리는 하늘을 찌르며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으며 초보 아빠, 엄마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없이 들어왔던 말들.

'뱃속에 넣고 있을 때가 좋다' 따위의 전혀 와닿지 않던 말들을 한 순간에 가슴 절절히 느끼게 해 주었다.


얼마나 위력적인 무기인가?

한 밤중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지는 저 소리.


"으..... 흐.... 애~~~~~~~~~~~~~"

"으악!!!   또 깼네"


새벽 3시 반.

지금 그는 잠이 들었다.

언제 다시 초보 엄마, 아빠를 당황하게 만들지 모른 채.

잠이 눈꺼풀을 짓누르는 지금.

오히려 마음이 푸근한 것은 왜일까?

폭풍우 지나간 항구처럼, 그가 막 잠들어서일까?^^


'뱃속에 넣고 있을 때가 편하다'에 이어 다음 문구가 떠 오르며 온몸에 스산한 소름이 스쳐간다.


<누워있을 때가 편하다>

 

2000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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