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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Dec 21. 2022

늙었지만 귀여운 고양이

하이브리드 고양이 15살 금동이 이야기 #2

거실 제 집에서 내 서재까지 오는데 수개월이 걸렸다.

아파트에서 새끼 때부터 5년간 살다가,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하이브리드 고양이(제 브런치 첫번째 글)'로 7년을 살고, 다시 복귀해 온 아파트. 12살을 넘겨 노년이 된 '금동이'에게 새 아파트의 거실에서 건너편 방까지는 머나먼 거리로 느껴졌던 듯하다. 거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금동이는 차차 거실 한 편의 밥그릇과 화장실을 드나들었고 안방까지 마실을 다녔다. 하지만 복도 형태로 된 건너편 방까지 '지켜야 할 영역'으로 삼기에는 버거웠던지 좀처럼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마당이 있는 처가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던 금동이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상자 집에 숨은 금동이


수개월이 지나서야 약간 어두운 복도(?)를 지나 내 서재와 제일 끝 아들내미 방까지 '야~옹'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야 집안 구석구석이 자신의 영역이라는 듯. 살며시 들어와서는 책상다리에 머리를 부비부비 하기도 하고, 누워있는 내 옆에 배를 깔고 누워 '갸르릉' 거리기도 했다. 집안 구석구석에 먹이를 둬야 '금동이' 나들이가 쉬워진다고 내 서재에도 먹이통을 놓아두고는 금동이의 방문을 기다리게 되었다. 조그맣고 귀여운 앞발로 간식을 빼먹는 모습에 벌써 예전에 다 커버린 아들내미 대신 둘째라도 생긴 듯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반려동물을 '우리 아이' 어쩌구 하며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고... 물론 밖에서 '우리 아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오늘도 서재에 앉아 있다가 금동이의 방문을 받았다. 살짝 열려있는 문틈을 비집고 들어선 녀석은 '야~옹' 하며 가냘픈 소리를 내며 '내가 왔음'을 알렸다. 먹이통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간식을 받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금동이에게 내 손을 내밀며 '손~!' 하고 말했다. 제 앞발 만지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녀석이지만, 간식을 핑계로 앞발 한번 만져보는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금동이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손, 아니 앞발을 내 손위에 살포시 얹었다가 얼른 빼내기 일쑤였다. 제 발을 호락호락 내 주기 싫다는 듯.


'손~!'

'그래... 이쪽 손~!'

왼쪽 앞발, 오른쪽 앞발.

작고 앙증스러운 고양이의 앞발, 화장실 가서 제 똥 파묻으며 수시로 건드렸을 그 앞발을 왜 그리 만져보고 싶은 건지... ㅎㅎ. 양발을 한 번씩 내밀어준 대가로 간식 통에 간식을 칸칸이 넣어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간식 한 개를 빼먹더니 슬그머니 돌아서는 게 아닌가?!

서재에 방문한 금동이
먹이 장난감 통과 잘 먹지 않게 되었던 간식

'어... 이번에 뜯은 치즈맛 간식이 맛이 없나? 웬일이지? ㅋㅋ'

간식이 맛이 없어 한 개만 먹고 말았나 보다 했는데, 아내는 놀이 후에 같은 간식을 줘 보더니

'그거 잘 받아먹는데...?' 한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금동이는 예전처럼 먹이통에 넣어준 간식을 먹지 않았다. 한 개만 빼먹거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도 하였다.


'금동이 어디가 아픈가? 동물병원 가서 건강 검진이라도 해 봐야 하나?'

간식뿐 아니라 금동이 움직임이 예전만 못한 것이 확연해지면서 아내의 걱정도 커져갔다. 우리는 원래 다니던 동물병원이 아닌, 근처에 새로 생긴 '고양이 친화 병원'이라는 병원에 방문해서 '고양이 건강검진'에 대해 문의를 하게 되었다.


'엑스레이와 혈액 검사 등 기본적인 검진에 4십 몇만 원,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하면 6십 몇만 원이고, 치아 스케일링 포함한 검사를 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해서 1~2십 더 들어갈 것 같다'는 병원 측 설명을 듣고 온 아내는 한숨을 내 쉬었다.


'우리 다니던 병원에선 저번에 전신마취는 위험하다고 했는데... 금동이 나이가 있어서'

'그렇지 그 병원에서는 전신마취 스케일링 안 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비용이 검진비 만이잖아... 만의 하나 어디가 어떻고 하며 수술 얘기 나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나?'

'그렇지... 금동이가 아마 나이가 들어 노쇠현상이 오는 게 아닌가 싶어. 저번처럼 특별히 눈이 아프다거나 항문낭이 생겼다거나 한 거는 아니니까'

'그래... 특별히 눈에 띄는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해 줘야 하지만... 적당히 사는데 까지 살도록만 보살펴 주자. 나도 몇십만 원짜리 건강검진받아 본 적도 없어 ㅎㅎ'


우리 부부는 '고양이 친화 병원' 주차장에서 근심 어린 목소리로 이런저런 방안에 대화를 나누고 고액의 검진은 포기하자고 결론을 내고, 대신 쉬는 날 조금 덜 믿음직스러웠던(^^) 다니던 동물병원에 데려가 보여 보기라도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다. (아내는 그렇게 여러 번을 갔는데 말로는 '순하다'라고 하면서, 원장이 금동이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준 적이 없다며... 다니던 동물병원을 싫어했다)

한쪽 눈병이 나 목보호대를 끼고 치료하던 금동이

그렇게 금동이가 간식을 잘 먹지 않기 시작하고 일주일을 넘기고 동물병원 데려갈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내는 금동이 입을 억지로 벌려 상태를 보더니

'어! 금동이 이가 시원찮다... 이거 봐!'

하며 누렇게 색이 바랜 금동이 한쪽 치아를 보여 주었다.


다음 날 금동이 이빨과 입안 사진을 찍어 동물 병원을 다녀온 아내는

'한쪽 이빨 끝이 깨졌대. 치주염도 있고 ㅠㅠ. 그래서 애가 먹는 것도 시원찮고 움직임도 영 예전만 못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하며 울상을 지었다.


동물병원 처방약을 먹기 시작한 금동이가 오늘도 내 서재에 놀러 왔다. 이가 시원찮아 간식을 잘 먹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간식 한두 알을 먹이통에 올려놔 줬는데... 후루륵 짭짭 먹는 게 아닌가! 한알 더 주고 또 한알 더 주고... 여러 알을 더 주었는데 주는 족족 먹어 치우는 게 예전의 금동이로 돌아온 것 같았다.


'여보... 금동이가 간식을 죄다 받아먹는다... 약 먹은 게 효과가 있나 봐~'

아내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약 몇 번에 금방 회복되는 것을 '늙어서 그런가' 했다고 한탄을 한다.




이제 금동이는 예전처럼 잘 땐 자고, 먹을 땐 먹고 제 영역 곳곳을 순찰 다니는 고양이로 돌아왔다. 동물병원에 한번 더 방문해야 하지만, 병원 처방약이 효과를 보았고 걱정했던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안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시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이제 해를 넘기면 15살인 귀엽지만 늙은 고양이가 또 아플 경우, 또 기력이 떨어져 보일 경우...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돈만 있다면 사람 아니라 고양이의 생명 연장도 너끈히 해낼 현대 의학의 힘에 의지 해야 할지...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마음 약한 '인간 엄마'를 잘 만나 천수를 누리다 가는 것에 만족하며 지켜볼지.


결론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다시 그 상황이 되었을 때 또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반려동물이 수명을 다 했을 때, 남성은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겪게 되고, 여성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 빠진다* 고 한다.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귀엽지만 늙고 병들어가는 금동이를 보내줄 일만 남아 있다.

함께 하는 동안 최대한 건강하게 살아 주기를 바라본다.


내 사랑하는... 늙었지만 귀엽고 예쁜 고양이 금동아!


* : 어디선가 읽었으나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문장 혹은 표현. 어느 책 혹은 신문인지... 아니면 브런치 였는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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