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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Nov 20. 2022

천천히... 타셔유~

나는 대구 경북에 살다가 대전으로 이사를 했었다(지금은 경기). 조급증에 걸린 듯 급하게 돌아가던 대구경북에서 충청도 대전으로 왔음을 실감하게 한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대전 시내버스에 한 할머니가 느릿느릿 올라타고 있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 할머니... 천천히... 타셔유~~

하는 게 아닌가?!


대구 같았으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못 타게 얼른 내빼던가... 아니면

- 할매! 빨리 타소!!!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터.


천천히 타시라는 충청도 버스기사의 느릿한 말투가 얼마나 정겹던지... 대전에 피붙이라고는 하나 없는 지금도 '다음에 가서 살고 싶은 곳'으로 '대전'을 말하곤 한다.

(물론 대전 기사나 대구 기사나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사족을 달아둔다^^)




요즘 시내버스들이 대거 전기차로 바뀌고 있다. 디젤엔진의 덜덜거림에 고생하던 기사와 승객들이 조용한 버스를 타느라 속삭이기도 미안할 지경이다. 그런데... 내연기관 차에 익숙한 기사님들이라 그런지 열에 아홉은 급출발 급제동... ㅠ. 마치 평소 달리기를 못하던 한이라도 풀어버리려는 듯 조금만 가면 다음 사거리 혹은 다음 정류장에 바로 설 건대도 휘리릭~~ 출발했다가 급하게 멈추는 상황이 못내 불편하고 위험해 보인다.

전기 버스에서는 연세 있는 분들 뿐 아니라 젊은 층들도 손잡이 잡기에 소홀했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으로 보인다.

어느 날은 잠시 사거리 정차 중에 갑자기 기사 아저씨가 벌떡 일어서더니

뒤를 돌아보고는 큰 소리로 훈계조 연설을 한다.


- 전기차는...
급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손잡이를... 

꼭...

잡아야...

돼요...!


그냥 '잘 좀 잡으시라'라고 해도 될걸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아마 얼마 전 승객이 버스에서 넘어져 기사가 배상하게 됐다는 뉴스 때문인 듯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전기버스를 만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 버스는 마치 내연기관 버스처럼 슬며시 출발, 부드럽게 멈추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전기차를 몰아보지 않았기에 그동안 버스의 급출발 급제동이 전기차의 특성 탓인가? 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렇게 운전할 수 있는데... 시내에서 버스로 카레이싱 하는 것도 아니고... 쯧쯧. ㅋ.

물론 다시 덧붙이자면... 모든 기사님들이 그런 것도 아닐 것이고, 그분들도 전기차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좀 살며시 출발했다가 부드럽게 정지해 줬으면 좋으련만...


대전 어느 버스 기사의 '천천히 타셔유~' 하는 느긋한 말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대전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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