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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Sep 16. 2022

풀벌레의 재즈

밤이 되면 흡혈귀라도 된 듯 어둠을 벗 삼아 아파트 단지를 어슬렁거린다. 그리고는 상가 뒤편 놀이터 벤치에 앉아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귀뚜라미 일까 여치 일까? 아니면 다른 녀석일까. 곤충류는 그저 "벌레"로만 아는 얄팍한 지식 탓에 예쁜 소리 들려주는 녀석의 이름도 알 길이 없다.


몇 개의 조명 아래 오가는 이 없는 한적한 곳의 정막. 풀벌레 소리 만도 감사하지만 파우치 가방에서 귓속형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아 다. 지금 어울리는 곡은 무얼까?


프랑스 재즈계에서 동양인으로는 드물게 인정받고 있는 "나윤선"의 재즈를 선택다. 재즈에 문외한이지만, 끈적한 느낌의 고전 재즈에 비해 좀 화사하고 밝은 을 주는 나윤선의 재즈가 귓속에 울려 퍼진다. 나윤선의 음성에 실린 "사의 찬미"도 꽤 마음에 든다. 영화 "해어화"에서 천우희가 불렀던 정직한  "사의 찬미"도 좋아하는데, 나윤선의 것에는 뭔가 꿈틀꿈틀 하면서 내면을 건드리는 이 있다.


곡이 끝나자 다시 풀벌레의 연주가 어둠을 가득 채운다. 나윤선 혹은 거장의 재즈 따위(^^)로는 이길 수가 없다.

대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

장엄하고 때론 처절한 삶의 소리인 것을.


이제 여름이 다 하고 겨울이 오면,

납작 엎드려 다시 생명의 꽃 피울 날 기다리게 될

생존의 연주가 어두운 가을밤을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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