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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Sep 12. 2022

평생의 첫 만남-4

고향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아직 어스름이 가시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 나와 아내는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대전으로 이사 온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구미, 대구 가는데 막혀봐야...' 

는 생각과

'2시간 갈 거리를 네댓 시간 걸리면 그것도 고역이다'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래서 우리는

'에라~ 새벽에 가자'하고 막무가내 정신으로 짐을 꾸리고 있다. 구미 본가에 갔다가 대구 처가로 가는 동선까지 고려하고 돌아올 작전까지 염두에 둔 터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 이제 열 달이 채 되지 않은 아기가 곤히 자고 있다. 누굴 닮아 예민한 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깨던 녀석이 오늘은 요지부동이다. 베개는 발치에 걸쳐있고 머리는 장롱에 부딪혀가면서...


녀석의 곤한 얼굴을 바라보니 옛 생각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이사 온 우리 집은 명절이면 기나긴 여행길을 떠나야 했었다. 명절이 무어라고... 4학년 추석에는 당일 휴일의 앞과 뒤를 결석해 가면서 고향 충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마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 후후. 고향 가려 결석이라니...


그렇게 귀향길 새벽이면 곤히 잠든 내 귓가에 부스럭 소리가 들려온다. 가늘게 떠본 실눈 사이로는 형광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이런저런 옷가지며 짐을 챙기는 엄마, 아빠. 나는 잠든 척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들으며 반쯤 깨고 반쯤 자면서 곧 일어나서 하게 될 기차여행을 기다렸다.


이제 이십여 년이 흘러 짐을 꾸리던 엄마, 아빠의 자리에 내가 서서 짐을 꾸린다. 내가 누워 실눈을 뜨고 귀를 쫑긋거리던 자리에는 나의 아기가 누워있다. 아직 녀석은 실눈을 뜨지도 귀를 쫑긋거리지도 않지만...


지금은 어둠 속을 편안히 승용차를 달리며 고향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십여 년 전 고생스럽던 귀향길이 더 그리워진다. 시내버스와 기차 그리고 시외버스를 갈아타면서 고향을 향하던 그 시간들이. 그리고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던 조치원역의 맛있던 짜장면도. 엄마 고향 마을 입구에서 한참 동안 걸어 들어간 그 어두컴컴한 시골길.


이런 정겨운 기억들과 함께 올 추석도 즐겁고 기쁜 일들이 가득하길 빌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뒷좌석에 곤히 잠든 아기와 아내와 함께...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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