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는 7리터의 물이 들어갈 정도로 컸다. 그 정도 양이면 일곱 식구가 하루 반나절을 마시고도 남을 양이었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한 주전자의 보리차를 끓이셨다. 지금처럼 정수기 물을 마시거나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다 마시면 편했겠지만 그 시절엔 정수기 물이건 편의점 생수 건 어느 것 하나 갖춰 놓지 않았다.
보리차를 끓이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약수를 떠 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휘발유 통 반만 한 크기의 통에 물을 받아 5킬로미터는 족히 됨직한 길을 돌아와야 했다. 한두 번이 아니고 매일 같은 시간에 그 먼 거리를 오가는 수고를 마다해선 안 된다.
두 통에 담아오면 이틀에 한 번 꼴로 가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물통 안 들어봤으면 그런 소리 하지 마시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팔뚝에 힘을 주고 물통을 바짝 들어 올리면 물통이 무겁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집에 가져가면 식구들이 마실 생각에 흥이 난다.
물통을 들고 얼마간 걸어가면 물통에 가득 찬 물의 무게와 만인에게 평등한 중력의 상호작용으로 팔끝으로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더는 못 견디겠다 싶으면 '못 할 짓'이라는 생각에 물통을 패대기칠 마음이 굴뚝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차라리 물통을 깨버리면 다신 이 고생 안 해도 될 것 같은 심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전거 뒤에 물통을 싣고 오는 걸 생각 안 해본게 아니다. 짐받이 위에 바-묶는 줄을 그렇게 불렀다.-로 아무리 단단히 묶어도 워낙 많은 물이 담긴 물통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한쪽으로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조심해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주의해도 상태가 좋지 못한 길에선 제어는 고사하고 균형을 잡기 쉽지 않았다. 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전거와 함께 쓰러지거나 바에서 풀린 물통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낭패를 여러 번 보았다. 그 뒤로 자전거로 물통 옮기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어머니의 호강은 그렇게 '물 건너갔'다. 이 표현이 혹 저 먼 유럽의 '루비콘강을 건넌다'는 말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동북아의 중심 한반도에서 어느 아낙네가 서방을 따라 냇가를 건넌 뒤로 친정과 연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인류보편의 표현으로 정착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머니가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호강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약수 뜨는 일을 관둔 뒤로 어머니가 무척 아쉬워한 기억은 난다.
'한 주전자 끓여 놨다'고 할 때의 그 '한 주전자'는 가늠하기 힘든 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날도 어머니는 한 주전자의 물을 끓여놓았다. 앞서 말했듯 우리 집 주전자는 남들 집에 비해 유난히 컸다. 일곱 식구가 마시려면 그 정도 양은 되어야 한다고 어머니가 며칠을 벼르고 별러 산 주전자였다.
적당히 식은 보리차를 나눠 마시며 식구들은 봄을 보내고 여름을 났다. 가을을 구수하게 실려보낸 뒤로 겨울을 너끈히 이겼다. 배탈 난 식구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가 매일 끓인 보리차 덕분이라는 믿음이 오래 내 안에 남았다.
- 아니 어떻게 그걸 다 마시냐고?
어머니는 좀체 믿기지 않은 눈치였다. 빈 주전자 한 번 보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빈 주전자를 또 여러 번 보셨다.
- 그걸 말이라고....
아무래도 어머니는 내가 동생과 장난치다 주전자를 엎은 모양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이유로는 그게 더 타당하고 현실적이었다.
그날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방 안팎을 한참두리번거리던 친구가 구석에 있던 물 주전자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친구가 대접에 물을 따라 마셨다. 갈증이 많이 났나 싶었다.
느닷없이 친구가 다 마셔도 돼?, 라고 물었고 나는 그러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조금 마시다가 말겠지. 입으로 주전자를 가져간 친구는 주둥이에 안 닿게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물을 털어 넣었다. 물은 금세 동났다. 그제야 사태를 직감한 나는,
- 아니 그걸 다 마시면 어떡해. 우리 식구가 먹을 물인데.
- 다 마셔도 된다고 했잖아?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겠지, 라고 웃어넘긴 게 화근이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딱 들어맞는 속담이었다. 쎄한 느낌이 목덜미를 틀어 쥐었다. 낌새를 챈 친구는 평소보다 일찍 대문을 나섰다. 얼마 뒤 어머니가 오셨다. 그날 난 친구 하나 잘못 둔 덕에 어머니에게는 물론 늦게 귀가해 급히 보리차를 찾은 아버지에게도 적잖이 꾸지람을 들었다.
그 뒤로도 친구는 우리 집에 들러 여러 번 문제의 주전자를 가져와 자기 발치 앞에 두었다. 대단히 몹쓸 경험을 한 나와 동생은 주전자를 사수하느라 혼을 뺐다. 그때마다 친구는 연신 군침을 삼켰다. 왜 그렇게 물에 집착하는데? 대체 왜?
몇 달 뒤.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며칠 집을 비우니 함께 자자고 친구가 집으로 나를 불렀다. 별생각 없이 집 문턱을 넘다가 화들짝 놀랐다. 워낙 화통이 큰 친구 어머니라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는 걸 잊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일찍 집을 나섰을 거라는 짐작도 한몫 거들었다.
- 고맙다. 매번 우리 아들에게 찐빵을 줘서. 먹을 게 별로 없어 늘 배를 곯았는데 네 집에만 갔다오면 아들 녀석이 배부르다고 좋아하더라.
- 언젠가는 네 집 먹을 물을 우리 아들이 다 마셨다며? 배가 너무 고파 그날도 네 집에 갔다더라.
- 찐빵이 없다기에 물로 배를 채웠다는데, 미안하다.
친구 아버지는 장돌뱅이로 전국을 떠돌며 행상을 했다. 친구 어머니가 돕기는 했는데 신통치 않았다. 부모가 뭐라도 팔려고 집을 나서면 그날부터 친구와 동생 둘은 거의 먹지 못했다. 집안에 쌀 한 톨 없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는 말을 나중에야 들었다.
머리를 세게 맞은 듯 현기증이 일었다. 눈물이 났다. 한 주전자 물을 죄다 비울 만큼 배가 고팠었다니. 중학교 2학년이면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 나이 대엔 먹고 일어서면 다시 배고팠다. 먹은 게 없는 속으로 종일을 어떻게 견뎠을까?하루도 아니고 여러 날을.
그날 뒤로 어머니는 거의 매일 찐빵을 쪄야 했다. 물도 어김 없이 끓였다. 친구 들으라고 어떻게 하다보니 이젠 매일 찐빵을 찐다, 는 말을 넌지시 흘렸다. 친구는 매일 와서 남자 애들 서넛이 먹을 양의 찐빵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봉지에가득 든 찐빵을 손에 들었다. 친구에게 찐빵은 생존이었다. 그 찐빵으로 친구는 동생들을 먹였다.
그때 참 뿌듯했었노라고 상념에 잠긴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 그게 빵이면 어떻고 물이면 어떠랴. 친구는 자기 어머니를 닮아 화통 삶은 목청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목사가 되었다. 곧 한겨울이다.찐빵을 질끈 배어 물 계절이 성큼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