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타임: 나만의 시간대, 저녁 7시 30분

소울 에세이

by 안녕 콩코드


누구에게나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그 시간’이 있다. 어떤 이는 새벽 4시의 적막을 사랑하고, 어떤 이는 해가 지기 직전, 마지막 빛이 스러지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게 그 시간은 언제나 저녁 7시 30분이었다.


그 무렵이면 하루의 소란이 스르르 물러나고,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세상이 조금씩 온순해졌다.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소리, 부엌에서 들려오는 칼질 소리, 가끔은 옆집 강아지가 짖는 소리조차 그 시간만 되면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 들렸다.


어릴 적, 저녁 7시 30분은 늘 밥 냄새와 겹쳐 있었다. 된장찌개 냄새가 골목까지 퍼지던 시절, 나는 마당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다 “밥 먹어라!”는 엄마의 부름에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조용히 신문을 펼쳤고, 나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빼앗긴 채 밥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들리던 뉴스 시그널 음악, “지금은 저녁 7시 30분입니다”라는 앵커의 목소리—그 모든 것이 내겐 하나의 정서였고, 시간의 결이었으며, 마음의 리듬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이상하게 오후 7시쯤이 되면 마음이 살짝 풀어진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귀갓길, 아직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늘 아래, 귓가에 어쩌다 스며드는 옛 가요 한 곡이 순식간에 나를 20년 전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 시절의 저녁 소리, 밥 짓는 냄새, 라디오 멜로디, 뉴스 오프닝,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까지—그 모두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의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있다.


저녁 7시 30분 즈음, 라디오에서는 종종 익숙한 옛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이문세의 ‘옛사랑’,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같은 곡들.


그 음악들이 흐르면, 나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사랑도, 실패도, 후회도 몰랐던 날들. 오직 감정만으로 가득 찼고, 하루하루가 이유 없이 설레고 벅찼던 시간.


어느 날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하루 중 단 한순간, 진짜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그 순간의 얼굴, 목소리, 눈빛, 생각—

그 모든 것이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시간.


그리고 내게 그 시간은 언제나 저녁 7시 30분이었다.


고요하면서도 가슴 어딘가가 찡한 시간. 바쁘진 않지만, 괜히 마음이 울컥해지는 그 순간.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기도 한 애매한 마음이 스며드는 때. 그런 감정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이 바로, 저녁 7시 30분이다.


예전에는 그 감정을 몰랐다. 그저 하루의 끝자락이자, 다음 날을 준비하는 평범한 저녁일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시간이 내 안에 작은 방 하나를 만들어두었다는 걸.


그 방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나만이 열 수 있는 오래된 감정의 서랍이 있다. 그 속엔 라디오에서 흐르던 멜로디, 엄마의 부름, 된장찌개 냄새, 그리고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내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지금도 가끔, 일을 마치고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7시 30분이 다가온다. 마음은 조용히 그 시절로 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그 시간, 나는 내 마음의 볼륨을 조용히 조금 높인다. 누군가에겐 그냥 스쳐가는 일상일지 몰라도, 내겐 영혼이 가장 투명해지는 순간이다.


소울 사운드가 멜로디라면, 소울 타임은 그 멜로디가 가장 아름답게 울리는 시간의 틈새다. 나는 그 틈새 속에서 오늘도 내 마음 한 조각을 꺼내어 조용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