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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커피, 그리고 청춘: 성수동 <스카프>에서

한 청년의 작지만 찬란한 둥지, 뜨거운 청춘의 온도

by 콩코드


서울 성수동의 이면도로,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그 골목 안쪽에 묘한 온기가 서린 공간 하나가 있다. 간판보다 먼저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그 안에 있는 한 청년의 기운이다. 군 제대 후, 한 치의 쉼 없이 바텐더와 바리스타로 살아온 그가 불과 넉 달 전, 이 조용한 골목에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카페 겸 바를 열었다. 대단한 홍보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없지만, 그 공간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수더분한 인상의 청년은 단정한 옷차림으로 손님을 맞았다. 매장을 채운 8개의 좌석이 빠르게 메워졌고, 그는 쉼 없이 움직이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주문을 받고, 직접 술을 따르고 커피를 내렸다. 간간히 섞는 말에서는 정감이 묻어났고, 자신이 만든 칵테일과 커피를 설명할 때는 묘하게 빛나는 눈빛이 있었다. 그건 자부심이었다. 잠시 앉아 그와 나눈 십여 분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지가 자연스레 전해졌다.


내가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경기 불황과 고물가 속,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문을 닫는다. 포기와 절망이 익숙해진 시대다. 그 속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삶을 설계하고, 커피와 술을 매개로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꿈꾸는 청년의 모습은 이 도시가 잃어버린 낭만이자,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의 둥지는 성수다. 이 동네엔 오래된 시장도 있고,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재개발의 기운이 감돌지만, 그런 동네일수록 더 짙은 삶의 향이 난다. 대략 15년 후면, 이곳도 어쩌면 또 다른 고층 유리빌딩들로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나는 바라본다. 그전에, 이 청년이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길. 지금처럼 자부심을 잃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맛과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딸과의 주말 나들이는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주홍빛 칵테일은 10도 남짓, 입안 가득 감도는 달콤함은 어느새 피로를 가뿐히 지웠고, 핸드드립 커피는 깊고 부드러웠다. 토스트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담백함으로 입맛을 잡았다. 음악은 라틴 아메리카의 색채를 띤 멜로디로 매장을 감싸고 있었고, 술병들이 진열된 선반 뒤로 작은 조명이 따뜻하게 비췄다. 그렇게, 우리의 오후는 잔잔한 풍경이 되었다.


나는 이곳을 나서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런 청춘이라면, 이 도시도 아직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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