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감각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20세기 일본 문학에서 가장 강렬하고 절절한 자전적 소설로 손꼽힌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타인과 다르게 느끼고, 세상 속에서 온전히 ‘나’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깊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익살과 가면을 쓰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사회적 역할에 부응하려 애쓰지만, 진짜 자신과의 괴리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 작품은 자기소외라는 주제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의 본질적 고통을 파고든다. 요조는 세상과 타인에게 ‘인간답게’ 보이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신을 실격자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 그리고 삶의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고 술과 약물, 자살 시도로 삶을 연명한다. 이러한 그의 고통은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 현대인이 겪는 존재 불안과 소외를 대변한다.
『인간 실격』은 절망만을 읊조리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히려 ‘나’를 찾고,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려는 끊임없는 몸부림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조는 그 시도에서 계속 실패하고, 점점 깊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이 과정은 독자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게 만들며, ‘살아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섬세하고 위태로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개인이 사회적 존재로서 겪는 고립과 부적응 문제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요조의 삶은 일본 사회의 억압적 구조와 도덕적 규범 속에서 어떻게 한 개인이 소외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현대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안겨준다.
『인간 실격』은 우리 모두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소외와 존재의 위기를 조용히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살아 있음의 무게와 그것이 흔들릴 때 찾아오는 허무, 그리고 그 속에서 길어 올리는 인간다움에 대한 절절한 탐구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동시에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붙잡으려 하는 존재인지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데미안』(헤르만 헤세)
‘나’라는 존재가 타인과 세계의 기대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그 기대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지를 그린 성장 소설. 요조가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데미안은 묵묵히 안내한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 윤리와 자아의 균열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녹아든 작품. 요조가 느끼는 삶의 무의미함, 그 근원적인 고독과 부유감을 좀 더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 『구토』(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세계와 자아 사이의 불화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주인공 로캉탱과 요조는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가졌지만, 존재 자체의 기괴함 앞에서 느끼는 메스꺼움은 닮아 있다.
•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인간 존재의 허무와 반복을 그린 희곡. 요조의 방황과 무력감이 실존의 보편적 조건임을 이해하게 만든다.
•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버림받고, 상처받고,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인물들의 이야기. 『인간 실격』이 ‘실격된 존재’의 내면을 파고들었다면, 이 책은 사랑이 그 실격을 어떻게 껴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