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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문장 사이
이튿날 오후 1시. 구내식당에서 5천 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따뜻한 국과 밥, 몇 가지 반찬이 소박하게 놓인 식판 위엔, 오전의 분주함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매일 비슷한 맛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익숙함 덕에 마음이 잠시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입 안에서 밥을 천천히 씹으며 생각했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이 한 끼가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건 아닐까.
식사를 마친 뒤, 자연스레 도서관 문헌정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언제 가도 조용했다. 밖은 여름의 열기로 후끈했지만, 에어컨 아래 책장 사이를 걷는 이들 각자는 저마다의 계절을 품고 있는 듯했다.
책장을 넘기다 문득,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동진. 그가 쓴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였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 무엇보다 문장의 균형을 아는 사람.
나는 늘 그런 이들을 존경한다. 이야기를 말로 풀어낼 줄 알고, 그것을 다시 고요한 문장으로 눌러 담을 줄 아는 사람.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자기만의 언어로 차분히 가라앉히는 사람.
책장을 펼치자, 말의 리듬이 먼저 다가왔다. 그가 이야기를 쓰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가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문장 하나하나에는 불필요한 장식이 없었고, 대신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의 시선과 체온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가 글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는 점이다. 바람과 햇살, 풍경과 음악, 그리고 ‘장면’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 나는 그 시선 속에서, 내 일상도 조금쯤은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했다. 아니, 착각이라 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책 한 권이 하루를 이끌어줄 때가 있다. 특별한 통찰 때문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이 그저 곁에 있어주는 힘 때문이었다. 조용히 옆에 앉아주는 친구처럼, 불쑥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누군가처럼.
그날의 나는 그렇게 한식과 문장 사이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잠시나마 내 이야기도 어딘가에 남겨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 같은 걸 품으며.
♧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과 감정, 그리고 그때의 사유를 섬세하게 풀어낸 산문집이다. ‘파이아키아’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섬으로, 오디세우스가 한동안 머물렀던 쉼의 장소다.
이동진에게 그 이름은 머물고 싶은 장면이자, 다시 떠나기 전의 감정이 깃든 자리였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삶의 여정 속에서 수집한 기억과 이야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소란스럽다 않은 문장에 담아낸다. 그렇게 책은, 독자 각자의 마음에도 오래 머무는 하나의 파이아키아를 건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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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부치며 생각한 것들
책장을 덮고, 천천히 부채를 꺼낸다. 쿠팡에서 구입한 3천 원짜리. 조악하지만 나름의 무늬가 있어, 싼티 속에서도 어딘가 기품을 흉내 내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조용한 문헌정보실, 어정쩡한 냉방, 창 너머 햇살이 눅진하게 쏟아지는 오후.
부채질을 하다 말고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쩌면 이 부채는, 책 보다 먼저 이 시간을 정리해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문장이 다 닿지 못하는 자리까지, 바람 하나가 다녀간다.
부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어떤 이에게는 귀부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제스처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무더운 장터 한복판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도구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이 부채를 흔든다. 여유를 가장하지만, 실은 더위를 조금이나마 잊고 싶은 몸짓으로.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이 엎어져 있다. ‘이야기가 남았다’는 그 문장처럼, 나도 오늘 하루를 이 작은 도서관에 조금 남겨두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책이야말로 기억을 보존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부채야말로 사라져 가는 감각을 되살려낸다고 믿는다. 피부에 닿는 바람, 종이의 결, 손목의 움직임. 모든 것이 느리고, 그래서 더 또렷하다.
부채질을 하다 문득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여름밤, 할머니는 잘 때마다 종이부채로 내 얼굴을 부쳐주셨다. 내가 깊이 잠들었는지 살며시 확인한 뒤에야 손을 멈추시던 그 모습이 선명하다. 그 바람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고, 그 바람은 소리 없이 내 곁에 오래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 다시 책장을 펼치지만, 책은 더 이상 활자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바람과 기억, 풍경이 겹쳐지고, 그 문장 사이사이에는 내 이야기도 스며든다.
오늘 나는 이 부채와 함께 초저녁까지 이곳에 머물 것이다. 글과 바람, 그리고 이 조용한 여름의 소란 속에서.
♤ 부채의 기원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부채가 예물이나 선물, 그리고 의식 도구로 사용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시인과 묵객들이 부채에 시를 적어 선물하거나 예술 작품으로 삼기도 했다.
접는 부채인 접선은 일본에서 발전했으며, 편평한 형태의 부채인 선자형은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중국에서는 부채를 선물하는 행위가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조선 시대 선비들은 부채에 시나 그림을 그려 서로의 교유를 나누었다.
또한 전통극에서 부채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부채를 닫으면 냉정함을, 펴면 친근함을 나타내며, 움직이는 바람의 결을 통해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렸다.
오늘날 부채는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더운 날이면 부채를 찾게 된다. 그렇게 오래된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마치 잊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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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자리
이 도서관은 6, 7년 전쯤,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던 익숙한 공간이었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면 자연스레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때로는 멍하니 앉아 시간의 어깨에 기대 쉬었다. 세상이 북적이고 바빠질수록, 이 조용한 공간은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이곳을 떠났다. 그 이유가 특별히 분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침 근처에 새로 생긴 대형 카페의 널찍한 의자와 은은한 조명이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그곳에는 음악이 흐르고, 적당한 소음이 있었으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도 혼자인 듯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이 도서관은 내 일상에서 밀려났다.
오늘, 나는 다시 이곳에 앉아 있다. 고작 몇 걸음 떨어진 자리지만, 마음으로는 참 오래 걸렸다. 벽은 그대로인데 책장은 바뀌었고, 자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창밖 풍경도, 계절도, 나도 변했는데, 이 도서관만은 내 자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의자를 조금 당겨 앉으니, 오래전 글을 쓰던 감각이 손끝에 되살아난다. 나는 이곳을 다시 ‘둥지’라 부르기로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공공시설일지 몰라도, 나에게 이곳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읽고, 쓰고, 쉬는 곳이지만, 무엇보다 ‘기다려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계절도, 삶의 방향도 모두 변해가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이들을 맞아주는 공간. 나는 오늘, 다시 이곳에서 나를 한결 가볍게 펼쳐본다.
♧ 도서관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7세기경,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는 세계 최초로 체계적인 도서관으로 평가받는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있었다. 이후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지식과 문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불경과 서적을 보관하는 장서각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장서각, 규장각 등이 학문 연구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공공도서관이 생겨나, 오늘날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쉼터이자 학습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도서관은 지식을 보관하고, 이야기를 품으며, 삶의 조각들을 조용히 잇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