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품격은 말끝에서 드러난다.
논리의 근거가 사라진 자리는 억지가 채우고, 상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틈은 추태가 파고든다.
억지와 추태는 언제나 짝을 이룬다.
상대를 꺾으려는 말과 자존을 지키려는 몸짓이 뒤엉킨 그 지점에서, 가장 날것의 민낯이 드러난다.
억지는 진실에서 벗어난 주장이고, 추태는 품위를 잃은 태도다.
억지는 남을 꺾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추태는 자존을 지키려다 오히려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가끔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더 주목받는다.
논리는 묻히고, 언성만이 남는다.
이기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억지는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밀어붙일 뿐이다.
추태는 단호함이 아니다. 감정의 무절제일 뿐이다.
그들은 때때로 ‘정의’를 말하지만, 실상은 이기심에 그럴듯한 포장을 씌울 뿐이다.
억지를 부리는 이들은 ‘원칙’을 들먹이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원칙은 대개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뒤틀려 있다.
추태를 보이는 이들은 ‘진심’이라며 울분을 토하지만, 정작 타인의 입장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억지와 추태는 모두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다.
진심은 방향을 가진다. 타인을 향하고, 관계 속에서 맥락을 만든다.
하지만 억지는 오직 자기만의 방향만 있을 뿐, 타인의 맥락은 삭제된다.
추태는 감정을 앞세워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그 감정은 대개 오염되어 있다.
자책이 아니라, 타인을 타격하기 위해 쓰이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억지를 부릴 때, 그 사람의 논리보다 표정과 침묵의 무게를 더 오래 기억한다.
추태는 상황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무너뜨린다.
한 번의 억지는 설득의 여지를 지우고, 한 번의 추태는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강 너머로 밀어낸다.
억지와 추태는 결국 고립을 부른다.
말을 걸던 이들은 침묵하고, 듣던 이들은 고개를 돌린다.
고집을 자존심이라 착각한 이들이 끝내 얻는 것은 자존이 아니라 외면이다.
가장 슬픈 것은, 억지를 부리며 스스로를 강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추태를 보이며 그것이 진심이라 착각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무너진 감정을 수습하지 못한 채, 방치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조용히 멀어진다.
감정의 소음은 진심을 증명하지 못한다.
진짜 강함은 설득의 논리를 끝까지 지키는 데 있다.
진짜 진심은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말할 수 있고, 추태 없이도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 사이를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예의이자, 품위 있는 절제다.
우리는 종종 생각한다. 사람은 결국 ‘한순간’에 드러난다고.
억지와 추태는 바로 그 한순간의 결정적인 증거다.
그 순간, 어떤 이는 스스로를 지키고, 어떤 이는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과 보이려는 태도가 과연 설득인지, 아니면 억지인지.
용기인지, 혹은 추태인지.
그 물음 하나만이 내 말의 무게를 지켜주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