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움직이는 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들, 침묵 속에 감춰진 규칙들이다. 사회는 언어로 굴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고 여기는 것들이 깔려 있다.
그것은 법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규칙도 아니다. 이름조차 없는 규범, 문장으로 쓰이지 않은 금기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 믿고, 어떤 날엔 ‘상식’이라 부르며, 그 위를 조용히, 말없이 걸어간다.
어린 시절, 나는 버스에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날이면 엄마의 눈빛만으로도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 잘못된 일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똑같은 눈빛을 아이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눈빛의 유산’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세대를 건너 전해진다. 말 한마디 없이 이뤄지는 훈육,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처음으로 배우는 ‘숨겨진 규범’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요즘은 도대체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 말 속엔 여전히 ‘맞는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문제는 ‘맞는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 더 이상 예전처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질서가 재편되는 한가운데에 서 있다.
말하지 않고 따르는 규범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이다. 겸손하되 튀지 말 것, 친절하되 지나치게 나서지 말 것, 주체적이되 불편함은 주지 말 것. 우리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조율되고, 조정된다.
그 규범들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하고 더 지배적이다.
가령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자. 회의 중 누군가가 손을 들어 발언한다. 내용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말투’가 낯설거나 ‘표정’이 단호하면, 금세 분위기는 어색해진다. 그 사람이 무례해서일까? 아니다. 그는 단지 ‘정해진 톤’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아무도 명시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말의 방식’, 그것 또한 하나의 규범이다.
이런 규범들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SNS에서도 작동한다. 어떤 이야기는 ‘좋아요’를 받기에 적당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유로 밀려나 침묵당한다. ‘불편하다’는 말 뒤에는 사회가 허용하는 경계와 금기가 숨어 있다. 그 말은 때로 침묵과 복종을 요구하는 신호가 된다. 당신이 옳은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말이 ‘눈치’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었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이 모든 규범을 무턱대고 깨부수자는 말은 아니다. 규범은 공동체의 리듬이자, 타인을 향한 배려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묻지 않으면, 그 규범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된다. 그럴 때, 규범은 삶을 조율하는 기준이 아니라 삶을 갉아먹는 굴레가 되고 만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 그 존재를 잊는 그 순간, 그것은 가장 은밀한 통제가 된다.
나는 우리가 이 규범들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으면 한다. 비록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조용히 질문을 던져 보자.
“왜 우리는 다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침묵해야 할까?” “왜 누군가의 분노는 정당한 감정으로 인정받고, 누군가의 분노는 예민함으로 치부되는 걸까?” “왜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성숙하다고 여겨질까?”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우리를 한 걸음 더 자유롭게 하는 열쇠일지 모른다.
규범은 때로 우리 삶에 안정과 편안함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우리 세계를 작고 단조롭게 만든다. 나와 너무 다른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새로운 질문 앞에서 쉽게 당황하는 이유,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이유.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 ‘말없는 규율’이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그리고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정상’에 대하여.
그 말하기의 시작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만든 울타리 바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말은 때로 자유의 문을 열고, 침묵은 종종 굴종의 사슬이 된다.
심층 학습
우리 주변에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규칙’들이 있다. 그런 규칙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다면,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순결과 위험』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 더글라스는 금기를 단순한 ‘금지 명령’이 아닌, 사회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설정한 ‘보이지 않는 선’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따르는 규범들이 어떻게 사회적 질서와 정체성을 만들고 지키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사람들은 종종 말보다 ‘침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침묵의 규범’을 통해, 우리가 언제 말을 해야 하고 언제 삼켜야 하는지를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과정을 설명한다. 엘리베이터 안의 정적, 회의 중 특정 주제에 대한 회피 같은 장면들이 그 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보이지 않는 규칙과 감시는 권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조절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CCTV가 없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누군가 보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스스로 행동을 조심했다.
이와 연결해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자기검열’ 개념이 등장한다. 우리는 종종 갈등을 피하거나 비난을 두려워해 스스로 말하기를 멈춥니다. 이런 자기검열은 사회 규범과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일상생활에서의 자아 표현』에서 우리가 모두 사회라는 무대에서 ‘배역’을 맡아 살아간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말투, 표정, 태도를 바꾸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규범’을 수행한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가 무심코 따르는 규범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또 전략적인 ‘역할 수행’인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적 시선들을 통해 우리는 ‘숨겨진 규범들’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사회, 감정, 권력, 관계의 복잡한 그물 안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