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수많은 발소리가 뒤섞여 아스팔트를 두드리는데도 그 풍경 속에는 이상하리만치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말이 없었다.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건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자판기가 웅웅대는 모터 소리,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뿐이었다.
도시는 언제부터 이렇게 침묵에 익숙해졌을까. 언제부터 말하지 않는 것이 이해의 방식이 된 걸까.
지하철 안, 누구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은 각자의 화면에 고정되거나, 조심스럽게 바닥을 향한다.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금세 의심의 대상이 되고,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순간, 차가운 경계가 돌아온다.
우리는 언제부터 침묵을 예의라 부르게 되었을까. 무반응을 배려로, 무관심을 성숙함으로 착각하게 된 건 또 언제부터였을까.
거리엔 수많은 표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표정들엔 감정이 머물지 않는다. 누구도 크게 웃지 않고, 누구도 오래 슬퍼하지 않는다.
기쁨은 부끄럽고, 슬픔은 번거롭다. 도시에서는 감정을 조절해야 살아남는다. 이곳의 공기는, 감정을 숨기는 일에 익숙하다.
말은 삼켜지고, 시선은 피하며, 마음은 서서히 닫힌다. 여기는 입을 다무는 거리, 그리고 눈을 감는 도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정적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오래도록 눌어붙은 흔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삼킨 이야기들,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얼굴들이 이 풍경을 만들었다는 것을.
도시는 속삭인다. “모른 척해라. 그래야 너도 무사하다.” “네 일이 아니라면 개입하지 마라. 그게 가장 안전한 법이다.” “입을 다물어라. 그래야 눈총을 받지 않는다.”
그 규범은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지만, 우리는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 입을 여는 순간 불편해질 것을, 눈을 마주치는 일이 곧 부담이 될 것을,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곧 약점이 된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도시가 아직 완전히 잠든 건 아니라고. 누군가는 여전히 누군가의 눈빛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오늘도 어딘가의 벤치에 앉아 자신의 속내를 조용히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온 한마디가 이 도시에 오래도록 내려앉은 침묵의 장막을 조심스레 걷어낼지도 모른다.
“그냥요… 나 좀 괜찮지 않아서요.” 그 말 한마디가 열어주는 작은 틈. 침묵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그 틈 사이로 비로소 사람이 보이기를.
심층 학습
도시의 침묵은 단순히 ‘조용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규범이자, 때로는 생존을 위한 전략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지오르그 짐멜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에서 도시의 인간이 끊임없는 자극에 노출되면서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경적 둔감함’을 택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도시에서의 무관심은 감정이 결여된 상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감정을 피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입니다.
또한 아를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에서는 사람들이 공공장소나 직장에서 감정을 조절하거나 숨기는 법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도시 거리에서 ‘무표정’이 기본값이 된 것도, 이런 감정 조절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한다는 이름으로, 동시에 ‘방해받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감정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도시 공간은 넓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거리감’이라고 부릅니다. 도시의 침묵은 관계의 부재라기보다, 관계를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미묘한 긴장 속에서 탄생한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침묵과 무관심의 이면에는 특정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정서적 금기도 작동합니다. 기쁨은 가벼워 보일까 두렵고, 슬픔은 짐이 될까 조심스럽고, 분노는 불편함이 될까 억눌립니다. 도시에서의 감정은 표현보다 억제가 더 자연스러운 감각이 되었고, 이 억제는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구조화된 규범에 가깝습니다.
이 글에서 느낀 침묵의 무게는 바로 이러한 ‘도시적 삶의 조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조건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한다면, 도시의 침묵이 단지 냉담한 풍경이 아니라 서로의 고요한 생존 방식이었음을, 그리고 그 안에도 작고 다정한 틈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