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은 언제나 조금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시간에 제공되는 음식, 좁은 공간 안에 단정히 차려진 식사 한 상. 마치 “당신은 지금 이동 중입니다”라는 말을 시각화해 놓은 것 같다. 정은의 산문집 『기내식 먹는 기분』을 읽는 경험도 그와 닮았다. 이 책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은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중간 지점의 마음들을 담담히 들여다본다.
정은의 글은 여행처럼 경쾌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그는 일상의 풍경 속을 천천히 걷는다. 아주 작고 평범한 순간들에서 마음의 조각을 조용히 길어 올린다. 카페에 혼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서랍 속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문득 떠오른 친구의 말 한마디. 이 책에는 크고 격한 감정보다는, 낮고 잔잔하지만 분명한 파동이 흐른다. 『기내식 먹는 기분』은 그렇게, 일상에 잠겨 미처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 건져 올리는 조용한 기록이다.
그 마음들은 단단하거나 뾰족하지 않다. 오히려 다 풀어진 스웨터처럼, 오래 써서 잉크가 희미해진 펜처럼, 무언가를 다 쓰고 남은 자취에 가깝다. 정은은 그런 자취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잔상을 붙들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때로는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마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태도는 독자의 마음을 조심스레 열게 만든다. 마치 "괜찮아"라는 말을 말없이 건네는 사람처럼.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정은의 글이 독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설득하지 않고, 위로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펼쳐 보인다. 그럼에도 묘하게, 그 조심스러운 문장이 진심을 가장 분명하게 전한다. 정은의 글은 마치 기내식 같다. 낯선 하늘 위에서도 어딘지 익숙한 온기를 품고, 마음을 놓게 만들어주는 조용한 배려처럼.
작가 정은은 시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애써 증명하지 않고, 감정을 과하게 포장하지 않으며, 때로는 말 대신 침묵을 문장 밖에 남겨두기도 한다. 그 여백은 독자에게 해석의 자리를 내어준다. 그녀의 글은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의 부재’를 품고 있다. 이야기로 메워지지 않은 감정들, 문장 뒤로 스며든 시간들,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오히려 글의 중심이 된다.
『기내식 먹는 기분』은 정은의 이러한 글쓰기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난 산문집이다. 문장은 격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이야말로, 오히려 이 글이 오래 남는 이유다. 어떤 글은 편지처럼 다정하고, 어떤 글은 말하지 못한 독백처럼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자신의 감정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여정 중,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 사람의 이야기다. 아직은 도착하지 않은 길 위에서 건져낸 마음들. 목적지보다 중요한 건, 그 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생각들일지도 모른다.
정은의 글은 요란하지 않다. 그러나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조용한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말없이 스쳐간 감정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