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고작 8분

지각–감정–판단의 흐름에 대한 짧은 성찰

by 콩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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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환승역. 플랫폼에 선 순간, 전광판에 뜬 도착 열차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네 정거장 전.”

헉. 너무 늦다. 잘못 왔어. 우회하지 말 걸.


그 짧은 시간 안에 머릿속은 분주하다. 이미 지나온 경로를 되짚고, 다른 선택지를 따져보고, 애매한 후회까지 스멀스멀 밀려온다. 하지만 문득 깨닫는다. 단 8분이다. 말 그대로 고작 8분. 커피 한 잔 기다리는 시간, 스마트폰 하나 꺼내면 사라질 몇 분의 여유. 그 몇 분에 대해, 나는 방금까지 얼마나 복잡한 판단과 감정을 쏟아냈는가.


우리의 일상은 이런 순간들로 가득하다. 몇 분 일찍 도착하기 위해 경로를 바꾸고, 1초 차이로 신호를 건너며, 몇 발짝 앞선 사람을 보며 조바심을 낸다. 그리고는 말한다. “이쪽이 더 빨랐을 텐데.” “괜히 돌아왔어.” 그 판단들은 대부분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말하자면 직관적인 계산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 직관이 늘 옳을까? 순간의 불편을 침소봉대하고, 실질적 손해보다 감정적 손실에 무게를 두는 우리의 마음. ‘헉’이라는 짧은 반응에 담긴 판단은 때로는 논리보다 무겁다. 그리고 그 무게는 ‘사실’보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제 플랫폼 위에서 천천히 걷기로 한다. 8분 동안 숨 고르고, 판단의 속도를 늦춰본다. 아마도 그렇게 한참 후에야 알게 될 것이다. 급하게 택한 판단이 때로는 더 느린 길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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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판단은 종종 ‘지각–감정–판단’이라는 짧고 빠른 경로를 따른다. 눈에 들어온 장면이 곧 감정을 자극하고, 감정은 즉각적인 결정을 끌어낸다. 철학자들은 이런 흐름에 종종 의문을 던져왔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성이 감정을 따르는 존재라고 했고, 칸트는 그와 반대로 감정 위에 선 자율적 이성을 강조했다. 현대 인지심리학 역시 판단의 상당 부분이 무의식적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 이전에, 우리가 그 판단의 구조를 ‘알고 있는가’이다. 눈앞의 전광판이 보여준 숫자보다, 내 안의 조바심이 내린 결론이 더 컸음을 인식할 때—우리는 조금 더 느긋하게,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조금의 기다림, 조금의 침묵, 그리고 조금의 성찰. 판단은 때로 그런 여백 속에서 더 정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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