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은 예의가 아니야.”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듣던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도 있다.
“그건 좀 예의에 어긋나는 발언이네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굳이 저런 얘기를 해야 하나요?”
우리는 종종 어떤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예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입을 닫는다. 문제는 그 판단이 사실이나 논리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누군가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이유, 분위기를 깨뜨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말은 ‘불편한 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불편함을 일으킨 사람은 곧 ‘문제적 존재’로 낙인찍힌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부르는 ‘예의’란 과연 진짜 타인을 위한 배려일까? 어쩌면 그것은 불편한 진실을 피해가기 위한 사회적 방어기제는 아니었을까?
예의는 종종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마저 금지하는 역할을 한다.
말을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돌려 말하는 것을 성숙함의 척도로 삼는 사회에서 분노와 고통, 질문과 고백 같은 진솔한 표현들은 점점 사라진다.
‘예의’라는 이름 아래 무해하지 않은 말들은 차단되고, 사람들은 점점 더 ‘괜찮은 척’에 익숙해진다.
묻고 싶다.
예의가 정말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누군가의 ‘정중한 침묵’ 속에 얼마나 많은 진실을 묻어버렸는가?
우리는 정말 ‘예의 바르게’ 말하지 못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 아니면, 그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했기에 ‘예의 없다’는 비난을 받은 것은 아닐까?
심층 학습
'정중함'과 침묵의 사회적 함수
문화인류학자들은 ‘예의’라는 개념이 단순한 매너나 도덕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과 권력을 조율하는 장치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한국, 일본처럼 고맥락(high-context) 문화에서는 직설적 표현보다는 '말하지 않는 방식'의 의사소통이 성숙함과 배려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 관련 개념: 고맥락 문화 vs 저맥락 문화 (에드워드 T. 홀), 침묵의 커뮤니케이션
무례함의 정치학 – 누가 예의 없다고 말하는가?
'무례하다'는 판단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종종 기존 질서나 위계, 다수의 감정에 반하는 목소리를 ‘예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다름을 억누르고 권위를 유지하려는 도구로 쓰기도 합니다. ‘말투’나 ‘분위기’를 문제 삼는 사회에서는, 내용보다 ‘말하는 방식’이 더 큰 검열의 대상이 됩니다.
→ 참고 도서: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 정치학』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나의 말은 왜 사라지는가?
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말을 아끼라’는 조언을 받는 경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검열하게 됩니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말의 강도를 조절하고, 결국은 아예 말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게 되죠. 그 침묵은 내면화된 권력의 가장 흔한 얼굴입니다.
→ 연결 주제: 자기검열,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억압
생각해 볼 질문들
나는 ‘예의’를 이유로 어떤 말을 삼켰는가?
예의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침묵이 배려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