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의 기준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건 좀 비정상 아니야?”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이 말은 종종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베고 지나간다. 누구는 그 말 앞에서 움츠러들고, 누구는 애써 괜찮은 척 웃는다. 정상이라는 말에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 그 말은 사람을 향해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너는 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주, 그리고 아주 쉽게 '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정상적인 반응’, ‘정상적인 가정’, ‘정상적인 사람’...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단어는 언제나 그 반대편에 ‘비정상’이라는 그림자를 함께 드리운다. 그림자가 드리우는 자리는 언제나 소수자의 자리, 다수의 기준에서 살짝 벗어난 누군가의 자리다.
정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선이 된다. 그 선 너머에는 삶의 다른 방식들이 있고,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을 쉽게 의심하거나, 동정하거나, 혹은 무시한다. ‘그런 사람도 있어’가 아니라, ‘왜 저렇게 살까?’가 먼저 나오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건 언제나 사회가 구성해낸 결과다. 시대가 달라지면 정상의 기준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왼손잡이가 비정상으로 여겨졌고, 여성의 교육을 ‘과도한 욕심’이라 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분명히 ‘상식’이었고, 그 상식은 ‘정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정상은 평균이 아니다.
평균보다 더 단단하고, 더 배타적인 어떤 기준이다. 정상은 단순한 통계값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은근한 명령이다. 그러니 정상은 종종,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들이대는 잣대가 된다. 그리고 그 잣대는 타인을 향하기 전에, 늘 나 자신을 향한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너무 다르진 않은가?
내 감정은 과하지 않은가?
내 생각은 이상하지 않은가?
이 모든 질문들은 사실 한 가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를 정상이란 기준에 맞추어 조율한다. 행동을 조심하고, 표정을 다듬고, 취향을 정제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비슷해지는 존재’가 되어 간다. 다름을 존중하는 시대라 말하면서도, 실은 우리는 여전히 다름 앞에서 불안해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틀림'으로 연결된다.
정상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감추고 있었을까? 정상이란 말 아래에서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지워왔을까?
장애는, 질병은, 정신의 불안정함은, 성적 지향의 차이는, 가족의 형식은, 모두가 정상이라는 선 앞에 놓이고 나면 말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된다. 어떤 고백은 괴상한 것으로 치부되고, 어떤 삶은 지나치게 특별한 것으로 오해된다. 그리고 그런 오해는 종종, 침묵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정상’이라는 말로 질서를 만들지만, 그 질서가 때로는 사람을 옥죈다. 그 질서가 우리의 세계를 단조롭게 만든다. 그 질서가 타인의 고통에 눈 감게 만든다. 결국, 정상이란 말은 우리를 위하는 척하며 우리를 나누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상이라는 말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누구도 완전히 ‘정상’일 수는 없다. 모두가 조금씩은 어긋나 있고, 흔들리고, 다르게 살아간다. 그러니 이제는 그 단어를 조금 더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정상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냥 ‘많은 사람의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많음’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대로 괜찮고, 너는 너대로 충분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진짜 ‘정상’이 아닌가.
심층 학습
‘정상’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통계적 평균이나 상식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적 권력의 산물로 작동해왔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펼쳐보길 권한다. 푸코는 이 책에서 중세 이후 서구 사회가 ‘비정상’으로 간주한 존재들을 어떻게 격리하고 침묵시켜 왔는지를 추적하며, 우리가 믿고 있는 ‘정상’이라는 질서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님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또한, 장애와 ‘정상성’에 대한 인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싶다면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법학자이자 장애인 당사자인 저자가 한국 사회에서 ‘정상’으로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배제하고 침묵시키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김원영은 우리가 ‘정상’이라는 말로 포장한 많은 것들이 실은 특정한 몸과 능력을 기준 삼아 누군가를 규격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임을 날카롭게 짚는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실격을 말하는가?”
심리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도 참고해볼 만하다. 프롬은 이 책에서 왜 인간이 때로는 자유를 포기하고라도 ‘정상적 소속감’을 추구하는지를 설명하며, 사람들이 자율보다 동일함에 기대려는 심리적 동인을 밝힌다. ‘정상’이라는 기준이 주는 안전함이 어떻게 개인의 판단력과 도전을 억누르는지 통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어떨까.
― 나는 언제 ‘정상’이 되고 싶다고 느꼈는가?
― 나는 내 다름을 숨긴 적이 있는가?
― ‘정상’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폭력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사유들이 어쩌면, 우리 각자의 ‘정상’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는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