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의 정치학

by 콩코드


사람들은 종종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칭찬처럼 쓴다. 그 말에는 분위기를 잘 읽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눈치란 결국,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공기-그 자리에서 흐르는 암묵적인 코드와 규칙들을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거기에 어긋나지 않게 조율하는 능력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분위기’라는 것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가?


어떤 모임에서 웃음이 허용되는 타이밍은 언제인지, 질문이 많으면 왜 곧잘 ‘귀찮은 사람’이 되는지, 누군가의 분노는 ‘적극성’으로 환영받고, 또 다른 누군가의 분노는 ‘불편함’으로 눌려버리는 건 왜인지.


분위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불편은 지워지고, 누군가의 말투는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적절함’의 기준은 언제나 가장 큰 목소리나 기득권자의 기호에 유리하게 맞춰진다.


우리는 대개 그 분위기에 동조하며 산다. 맞춰야 어색하지 않으니까. 튀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이 도시는 ‘분위기’라는 이름의 정적 아래 말 없는 권력들이 움직이는 질서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분위기. 하지만 그 분위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건 지금 꺼낼 얘기가 아니야.”

“지금은 분위기 좋잖아, 왜 굳이?”

“거긴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게 예의지.”


결국 분위기는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치가 되고, 때론 질문을 거세하고, 때론 정당한 이의제기를 ‘분위기 파악 못 하는 행동’으로 몰아간다.


우리는 분위기를 읽으며 자신을 검열한다. 말할지 말아야 할지,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얼마나 웃고, 언제 침묵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계산한다.


분위기는 공동체의 매끄러움을 위한 윤활유처럼 보이지만, 그 매끄러움은 종종 너무 많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침묵 속에서 진심은 작아지고, 불편한 진실은 뭉개지며, 무례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버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정말 ‘분위기’를 존중하는 걸까?

아니면, ‘분위기’를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덮고 있는 걸까?


어쩌면 분위기는 가장 교묘한 정치일 수 있다. 말하지 않는 권력이며, 사람들의 말과 표정, 침묵의 타이밍까지 조율하는 은근하고도 강력한 통치 방식으로 말이다.


그 정치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고, 웃고, 감정을 나누는 방식에 자유를 되찾는 첫걸음일지 모른다.




심층 학습


‘분위기’라는 이름의 비가시적 권력이 어떻게 사회적 통제의 도구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먼저 짚어보자. 푸코는 규율과 통제는 감옥이나 병원, 학교 같은 제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과 관계 속에서도 우리 몸과 마음을 관리한다고 말한다. 분위기는 그 관리의 일환일 수 있다.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는 조용한 사람들의 힘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사람’을 종종 소극적이라 오해하는 이유, 그리고 외향성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속에서 침묵이 어떻게 억눌리고 왜곡되는지를 짚는다. 침묵은 때로 회피가 아니라 깊은 사유의 방식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또한 국내 연구자인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도 분위기와 공동체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다. ‘환대’란 타인의 존재와 불편함을 인정하는 태도라는 점에서,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다름을 수용하는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더 넓은 공동체를 위한 길이라는 통찰을 준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어보면 좋겠다.

― 지금 내가 조심하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면 거부당하지 않기 위한 자기 검열인가?

― 분위기를 읽고 따르는 삶은 언제부터 내 안의 말을 잠재우기 시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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