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피로 — 감정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by 콩코드


우리는 지금, 공감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의 고통이든 마치 내 일처럼 느끼고, 이해하고, 반응하길 요구받는다. 뉴스를 켜면 참사와 재난, 누군가의 절망이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거리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넘쳐나고, SNS에는 고백과 분노, 호소와 탄식이 쏟아진다. 감정은 이제 공유를 넘어, 강요의 문턱에 이르렀다. “공감하라”는 말은 더 이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이 아니라, 어느새 사회가 개인에게 던지는 도덕적 지침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뉴스를 보다가 화면을 꺼버린 적이 있다. 비극적인 사고를 다룬 보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슬픔보다 먼저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 정도로만 슬퍼도 괜찮은 걸까?’ ‘지금 이 화면을 끈 내가 너무 무정한 건 아닐까?’ 사실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깊이 이입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통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었기에, 그저 숨을 고르고 싶었을 뿐이다.


공감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작동한다. ‘공감하지 않으면 냉담한 사람’이라는 불안, ‘공감해야 좋은 사람’이라는 압박. 그런 기대 아래 사람들은 점점 감정을 닫고, 표정을 지운다. 모든 상황에 끝까지 마음을 열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내요” 같은 단순한 말로, 복잡한 고통을 봉합해버리기도 한다. 그 말이 언제부터인가, 공감의 빈자리를 채우는 수단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을 무한히 쏟아낼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모든 고통에 다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 타인의 삶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감정에 경계를 그을 줄 아는 정직함이다. 무조건적인 공감보다 더 시급한 건, 마음을 덜 쓰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냉담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회복을 위한 절실한 선택이다.


‘공감의 피로’는 차가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 뜨거운 마음으로 타인의 고통을 껴안으려 했던 이들에게 찾아온다. 지독한 감정의 번아웃, 마음의 몸살처럼. 진짜 공감은 감정의 여백에서 시작된다. 내 안의 작은 감정을 먼저 돌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고통 앞에서도 진심으로 머물 수 있다.





심층 학습


심리학자 폴 블룸은 『공감의 배신』(원제: Against Empathy)에서 “공감은 도덕 판단의 기초가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감정에 기반한 공감은 선택적이고 편향되기 쉬우며, 때로는 윤리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보다 이성적 공정함이 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연대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공감 피로’의 근본 원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할 때, 이 책은 훌륭한 비판적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원제: How Emotions Are Made)에서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상황과 학습에 따라 구성해 내는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정되고 문화적으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느끼는 공감 또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감정에 대한 통념을 흔들며, 감정 표현과 공감의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피로를 과학적 시선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브렌 브라운은 『불완전함의 선물』(원제: The Gifts of Imperfection)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취약성과 수치심, 공감의 심리를 탐구하며, 공감은 반드시 자기 소진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정성 있는 삶과 자기 연민, 건강한 경계 설정에 대한 통찰은 ‘공감의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이고 따뜻한 안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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