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사회적 미화

by 콩코드


“그럴 땐 그냥 넘어가는 게 어른이지.” “괜히 말 꺼내서 분위기 망치지 마.” “침묵이 더 많은 걸 말해줄 때도 있어.”


이런 말을 우리는 참 자주 듣는다. 때로는 스스로에게도 되뇐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야." "굳이 말해서 불편해질 필요 없잖아." "이런 건 그냥 알아서 넘어가는 게 나아."


그렇다. 침묵은 분명 미덕일 수 있다. 격한 감정을 삼키는 절제,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배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판단. 우리는 그 정숙함에 '성숙'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생각해 보자. 그 침묵은 언제부터 ‘선택’이 아니라 ‘요구’가 되었는가.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는 순간, 말하려는 사람은 곧 미성숙한 존재로 분류된다. 흥분한 사람, 민감한 사람,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할 용기를 내는 순간, 우리는 ‘분위기 흐리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눈치를 본다. “지금 그 말을 꼭 해야 해?” “다 알고 있는 얘긴데, 굳이 왜 꺼내?” “조용히 넘어가자. 이러다 말만 많아져.”


그런 식의 침묵은 과연 자발적인 것인가. 아니면 강요된 결과인가. 누군가는 고요 속에서 해방감을 느낄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 침묵 속에 갇혀 숨이 막힌다.


우리 사회는 종종 ‘말하지 않음’을 성숙함으로 포장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 어른스러워 보이고,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감정에 휘둘린 존재로 간주된다. 하지만 감정을 말하는 것이 꼭 미성숙한 행동일까?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유치한 걸까?


우리는 분노보다 침묵을, 질문보다 순응을, 표현보다 무표정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 미덕은 언제부턴가 암묵적인 의무가 된다.

“그 나이 먹고 그 말이 나와?”

“조용히 넘길 줄도 알아야지.”

말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추켜세울수록, 말하는 사람은 점점 고립된다.


묻자.

정말 침묵이 모든 상황에서 옳은가? 그 침묵은 타인을 위한 배려인가, 아니면 자기 보호를 위한 회피인가?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미덕'이 되어선 안 된다. 때로는 말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도 있다.


우리는 다시 말해도 괜찮다. 느낀 것을 말해도 되고,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해도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 성숙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침묵이 우리를 지켜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말이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할 수도 있다. 성숙함은 말을 삼키는 데 있지 않고, 적절한 때에 말을 꺼낼 줄 아는 데 있다.


이제는 침묵의 미덕을 의심해도 좋다. 말하지 않는 것이 항상 옳은 선택은 아니라고, 조용한 것이 언제나 현명한 태도는 아니라고. 우리는 더 이상 말없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침묵과 말하기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사유하기


‘침묵’이 단순한 말 없는 상태를 넘어 사회적 질서와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학문적 시선이 필요합니다.


아드리엔 리치(Adrienne Rich)의 에세이집 『On Lies, Secrets, and Silence』(1979)는 제목 그대로 ‘거짓, 비밀, 침묵’의 정치적 의미를 탐구한 글 모음입니다. 이는 단지 침묵의 긍정이나 시적 묵상을 넘어서, 침묵 그 자체가 어떻게 권력의 언어가 되고 억압의 도구가 되어왔는지를 치밀하게 드러냅니다.


리치는 “언명되지 않은 것들은 단순히 말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는 통찰을 전합니다. 즉, 이름 지어지지 않은 감정이나 경험은 언어에서 배제되면서 존재 자체가 삭제되거나 무력화된다는 뜻입니다.


특히 위 본문의 맥락에서, 이 책은 ‘말하지 않을 자유’와 ‘말하지 못할 구조’를 구분하게 해 줍니다. 리치는 자신이 겪은 개인적 경험들과 사회 속 소수자들이 침묵을 강요받았던 사례들을 통해, 침묵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며 언제든 폭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말하지 않음’이 미덕인지 선택인지, 또는 권력에 의한 강제인지를 사유하는 데 있어 깊이 있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과 숨겨진 고통에 귀 기울이고 싶은 독자에게, 리치의 통찰은 잔잔하지만 강력한 목소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많이 아쉽습니다.


말할 자유는 민주주의의 뿌리입니다. 티모시 스나이더는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에서 일상의 침묵이 어떻게 체제의 폭력에 순응하는 문이 되는지를 역사적 사례와 함께 서술합니다. 말하지 않는다는 미덕이 언제 폭정의 조력자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서로 봐도 무방합니다.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Quiet)』는 침묵의 긍정적인 측면을 조명하면서도, 사회가 침묵과 표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잃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수잔 케인은 말하지 않음을 선택할 자유와, 말할 용기를 가질 권리— 두 가지 모두가 존중받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현대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에서는 ‘침묵’을 개인의 내면 문제로만 보지 않고, 공동체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사회적 행위’로 바라봅니다. 특히 ‘사회적 기대’와 ‘말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내면화되고 재생산되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침묵의 강요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내면화된 억압’이 어떻게 불안, 우울, 자기 검열로 이어지는지를 밝히는 심리학적 연구들을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문학과 예술에서 침묵이 어떻게 표현되고 해석되는지 탐구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침묵을 통한 저항, 회피, 연대 등의 복합적인 의미망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는 작업은 사회적 침묵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 ‘말하기’와 ‘침묵’ 사이의 균형을 찾는 실천적 방안과 문화적 전통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공동체와 문화권에서 침묵과 발언이 갖는 의미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연구도 ‘말 없는 강요’를 넘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