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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생명의 경계에서 묻다

인간 없는 낙원을 꿈꾸며. 우리가 창조한 존재들과의 공존은 가능한가?

by 콩코드


또 다른 반복인가, 진짜 '새로운 시작'인가?


2025년작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Jurassic World: New Dawn)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무너진 파크, 반복되는 재앙, 부활한 공룡, 탐욕에 눈먼 인간. 이 모든 요소는 1993년 《쥬라기 공원》부터 이어진 시리즈의 DNA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단순한 속편이나 화려한 리부트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선언과 반성문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공룡을 통해 무엇을 보려 했는가?”라는 질문이, 이야기의 기저를 이룬다.


제목 ‘New Dawn’은 상징적이다. 과연 이 새로운 새벽은 희망의 시작인가, 아니면 더 깊은 어둠의 전조인가? 영화는 조용히 속삭인다. 공룡은 돌아왔고,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줄거리 요약 – 인간 세계에 스며든 거대한 타자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사건 이후 수년이 흐른 세계. 인류는 공룡과의 공존이라는 초유의 현실에 적응하려 애쓴다. 격리 보호구역이 생기고, 국제 생명보존 기구가 출범하지만 도심은 여전히 혼돈 상태다. 공룡은 마치 야생동물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불법 밀렵과 유전자 조작 실험은 은밀히 확산된다.


이 혼돈의 중심에 두 인물이 있다.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생물학자 마야 리우 박사, 그리고 밀렵꾼에게 가족을 잃고 생존만을 좇는 소년 가브리엘. 두 사람은 ‘뉴 제네시스 보존 구역(New Genesis Reserve)’에서 조우한다. 이곳은 인간과 공룡이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설계된 이상도시, 일종의 두 번째 낙원이다. 하지만 균열은 곧 드러난다. 공룡들 간의 생태 경쟁, 인간 집단 간의 이권 다툼, 그리고 외부 세력의 개입은 유토피아의 허상을 빠르게 드러낸다.


진짜 위협은 공룡이 아니다.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 ‘노바젠(Novagen)’은 공룡 DNA에 인간 유전자를 접목시키고, 이를 무기로 삼으려 한다. 그들은 진화를 ‘통제 가능한 설계’로 포장하며, 자연을 실험 장난감처럼 다룬다. 영화의 절정에서 뉴 제네시스는 무너지고, 리우 박사의 독백만이 남는다.


“우리는 생명을 되살린 게 아니라, 기억 없이 태어난 존재를 만든 거예요. 그들이 정말, 우리의 낙원에 순응해야만 하나요?”



시리즈의 단절인가, 진화의 도약인가?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과거 시리즈의 유산을 이어받으면서도,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시한다.


공포에서 생태로: 1993년 원작이 공룡의 위압과 공포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영화는 그들을 생태계의 일부로 조명한다. 카메라는 낮아지고, 한 마리의 숨결과 발자국에도 서사가 실린다. 다큐멘터리적 미학이 도입되었다.


재난에서 윤리로: 기존 시리즈가 재난 탈출극이었다면, 본작은 공존 공간의 윤리적 한계에 초점을 맞춘다. 파괴보다 더 무거운 것은 도덕적 균열이다.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후반부에는 공룡의 시점이 직접 등장한다. 도시 외곽에서 길을 잃고, 나무 아래서 죽음을 맞는 한 공룡의 눈빛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결국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시사한다.


연출의 변화와 유산의 복원


감독은 자연주의적 미장센으로 주목받았던 신예 리사 차오(Lisa Zhao). 그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추천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았으며, 스필버그는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공룡은 더 이상 괴물이어서는 안 돼요. 그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죠.


그 결과 영화는 공룡을 단순한 공포가 아닌 감정을 지닌 존재로 묘사한다. CG 대신 실물 애니매트로닉스가 주요 장면에 사용되어, 1편의 실감과 경외감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쥬라기 공원》의 핵심 인물 엘리 새틀러 박사(로라 던)가 리우 박사의 멘토로 등장한다. 그녀는 말한다.


“생명은 늘 틈을 찾아 흐르지. 우리가 통제하려 할수록, 더 멀리 가버릴 거야.”


이 말은 1편의 명대사 "Life finds a way"를 오늘날의 문맥으로 되살린 것이며, 통제보다 공감과 이해를 우선시하는 철학으로 이어진다.


공룡의 재현이 아닌, 인간 욕망의 투사


이 영화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과연 공룡을 되살린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것인가?


작중 공룡은 과거의 생물체가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 선택과 조합에 의해 태어난, 기억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문화도 생태적 맥락도 없이 탄생했고, 결국 인간 욕망의 투사물이자 생명에 대한 오만의 상징이다.


리우 박사의 경고는 강렬하다. “우리는 자연을 되살린다 말하지만, 사실은 신이 되려 한다.” 이는 생명윤리에 대한 분명한 비판이다. 공룡을 대하는 사회의 다양한 반응 — 숭배, 포획, 혐오, 부정 — 은 타자에 대한 현대 사회의 시선을 반영한다. 이들은 이민자, 인공지능, 소수자 등 타자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결말의 의미 – 준비되지 않은 인류


결국 뉴 제네시스는 붕괴한다. 고도로 설계된 유토피아조차 인간의 욕망 앞에선 무력했다. 리우 박사는 소수의 공룡과 함께 북극의 무인 생태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그녀는 말한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그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카메라는 한 마리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비춘다. 무리에서 떨어져 조용히 눈을 감는 순간. 그 장면은 시끄러운 파괴보다 더 큰 정적과 경외를 남긴다.


이것은 쥬라기 시대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그들과 함께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남긴 유산


이 작품은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는지를 묻는 진지한 성찰이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감당하지 못했는가? 창조의 시대에, 우리는 생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시리즈 중 가장 조용한 작품이지만, 그 침묵은 오랫동안 귓가에 남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모든 생명은 돌아온다. 우리는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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