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문명: 모기가 바꾼 인간의 역사

티모시 C. 와인가드의 『모기』를 통해 본 질병, 권력, 제국의 역학

by 안녕 콩코드


프롤로그

- 작은 살인자, 거대한 서사

모기는 우리 일상에서 가장 익숙한 적이다. 여름밤의 윙윙거림, 물린 자리에 남는 가려움, 때때로 전해 들리는 말라리아와 지카 같은 열대병의 뉴스. 하지만 우리가 ‘귀찮다’고 여기는 이 곤충이 인류 역사의 결정적 장면마다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티모시 C. 와인가드의 『모기』는 이 작은 생물이 인류 문명의 경로를 어떻게 뒤흔들어왔는지를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논리로 추적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질병사나 생물학적 보고서가 아니라, ‘모기’라는 비인간 행위자를 통해 인류사를 다시 읽는 일종의 생태-정치적 역사서다.


와인가드는 말한다. 인간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존재는 다른 인간이 아니라 모기였다고. 인간은 그 역사 내내 모기에 쫓기며 살았고, 모기와 그가 옮기는 병원체들은 전쟁의 결과를 바꾸고, 제국의 흥망을 좌우하며, 과학기술과 의학의 진보를 자극해왔다. 모기는 단지 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아니라, 역사의 숨은 조정자였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기가 위험하다”는 생태적 경고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만이 역사의 주체’라는 통념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역사 읽기의 제안이기도 하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비(非)인간 존재가 어떻게 인간 세계의 권력, 정치, 전쟁, 경제의 작동 원리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인간의 의지와 결단, 사상의 흐름, 기술의 발전 등으로 설명되어왔다. 하지만 『모기』는 이러한 인간 중심의 서사를 넘어서, 지극히 ‘작고 무시된 존재’가 어떻게 세계사의 방향을 좌우했는지를 치밀하게 밝힌다. 말라리아가 어떻게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을 멈추게 했는지, 모기가 어떻게 로마 제국의 국경선을 바꿔놓았는지, 왜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미국 남북전쟁과 파나마 운하 건설, 1·2차 세계대전의 병참 전략까지—모기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모기』를 톺아보는 이 글은 단순한 서평이나 요약을 넘어서, 모기가 역사의 결정 요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다른 질문으로 확장된다. “역사란 누구의 이야기인가?”, “어떤 존재가 역사를 만든다고 할 수 있는가?”, “비인간 행위자를 역사 서술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모기는 생물학적 존재이자 사회적 행위자, 정치적 변수이자 경제적 비용이다. 우리는 그것을 피하고자 도시를 바꾸고, 전쟁 계획을 조정하고, 과학을 개발하고, 심지어 인종 위계나 제국의 논리까지 구성해왔다. 이는 단지 의학적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와 ‘문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재구성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포스트휴머니즘, 생태인문학, 환경사, 동물사 등 다양한 최근 학문들은 인간 이외의 존재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을 주목해왔다. 와인가드의 『모기』는 그 대표적인 대중적 사례로,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텍스트다. 그 안에는 권력과 생물학, 문명과 병리, 과학과 식민주의가 교차하는 거대한 서사가 응축되어 있다. ‘모기’는 곧 세계를 읽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문명을 되묻는 렌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작은 곤충’ 정도로 모기를 치부할 수 없다. 이 생물은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심연에서, 인간의 오만과 불균형, 기술의 맹신과 제국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누구였고, 지금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문명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되묻게 만드는 존재다. 작은 살인자, 그러나 거대한 서사. 이 책은 그 이야기를 다시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를 묻는다.


제1장. “작은 포식자”의 계보학: 모기의 생물학과 진화

모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곤충 중 하나다.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공룡과 함께 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에 적응해 왔다. 현재 전 세계에는 3,500종이 넘는 모기가 존재하며, 이 중 약 100여 종이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티모시 C. 와인가드는 『모기』의 첫 부분에서 이 작은 생물의 생물학적 정체성과 진화 전략, 그리고 그것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장은 단지 곤충학적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모기를 하나의 역사적 행위자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토대를 제공한다.


1. 모기의 분류학과 진화 전략

모기는 쌍시목(Diptera)에 속하며, 파리나 깔따구와 유사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쿨리시데과(Culicidae)에 속하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노펠레스(Anopheles), 아이디스(Aedes), 큘렉스(Culex) 같은 속(屬)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모기가 식물의 즙이나 과즙을 섭취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단지 암컷 모기만이 번식을 위해 혈액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알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받기 위해서다. 이처럼 피를 빠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폭력이 아니라 번식을 위한 선택적 전략으로 이해된다.


이 생식 전략은 모기를 인간 사회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생태적 경로를 만든다. 인간과의 접촉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특정 생태적 조건에서 생긴 구조적 관계다. 특히 인간의 정착 생활, 농경, 목축, 도시화 등은 모기의 번식 조건인 정체 수역을 끊임없이 만들어왔으며, 이는 모기가 인간을 향해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흡혈의 생물학: 암컷, 피, 알

모기의 ‘흡혈’은 단순한 생리학적 기능이 아니라 진화적 기능의 집약체다. 암컷 모기는 피를 빤 뒤 며칠 내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흡혈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이다. 모기는 숙주에 접근할 때 이산화탄소, 체열, 땀의 화학물질을 감지하고, 주사기와 같은 주둥이로 피부를 관통한다. 이때 항응고제와 진통 성분이 포함된 타액이 함께 분비되어, 우리가 가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이 타액을 통해 병원체가 함께 침투한다는 점이다. 말라리아 원충(플라스모디움),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황열병 바이러스 등은 모두 모기의 침을 통해 인간의 혈류로 진입한다. 모기는 단지 운반 수단이 아니라, 병원체가 자신의 생애주기를 완성하는 중간 숙주이자 증식 공간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병원체 사이에는 모기라는 진화적 매개자가 존재한다.


3. 병원체와 모기의 공진화

말라리아 원충과 아노펠레스 모기 사이의 관계는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공진화적 시스템의 대표적 사례다. 이 둘은 서로를 위해 진화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매개로 하여 생존과 번식을 가능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뎅기나 지카바이러스는 아이디스 속의 모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모기들은 대개 도시화된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다.


모기가 병원체를 옮긴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는 위험 요소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적응의 산물이다. 병원체는 숙주를 즉각 죽이지 않으면서 체내에 오래 머무르고, 모기는 이 병원체를 퍼뜨리면서도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러한 절묘한 균형이 인류 역사에 전염병의 시대를 열게 했고, 그 결과가 때때로 전쟁과 제국의 운명을 갈랐다.


4. 인간-모기-병원체의 삼각구도

모기, 병원체,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조 안에서 서로 얽혀 있다. 인간은 병원체를 피해 도시를 설계하고, 군대의 주둔지를 정하며, 제국의 경계를 설정해왔다. 반대로 병원체는 모기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인간 문명의 중심지에서 치명적인 대가를 요구해왔다.


예컨대 말라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진군을 막았고, 로마 제국의 팽창을 저지했으며, 미국 남부의 노예제 유지에 기여했으며,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화에 결정적인 제약을 가했다. 병원체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모기, 병원체가 서로의 전략에 포함된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삼각구도는 단지 전염병의 차원이 아니라, 문명사와 권력구조의 재배열을 초래한 생물-정치적 장치로 읽을 수 있다.


5. 생태적 요인: 습지, 기후, 도시화

모기의 생존과 번식은 생태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특히 고여 있는 물, 즉 습지와 정체된 수역은 모기의 이상적인 번식지다. 이는 곧 자연 환경과 인간 사회의 구조가 모기의 번성에 직결된다는 뜻이다. 수로를 파고 농지를 관개하고, 도시화를 통해 빗물받이와 물탱크를 만들고, 쓰레기 매립지와 빈 캔을 방치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모기의 서식처가 된다.


기후 변화는 또 하나의 변수다. 기온 상승은 모기의 서식지를 고위도와 고지대로 확대시켰고, 감염병의 발생 가능 지역도 넓어졌다. 특히 뎅기열과 지카는 열대성 질병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아열대와 온대 지역에서도 출현하고 있다. 도시화와 기후 변화, 생태적 파괴는 결국 인간이 모기를 위한 환경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정리하며

이 장은 단순한 생물학 개요를 넘어서, 모기라는 생물학적 존재가 어떻게 정치적·문명적 문제로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모기의 진화는 단지 자연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문명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 역사적 실체다. 인간과 병원체, 환경과 기술 사이의 얽힘 속에서 모기는 단지 곤충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 등장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 주체가 어떻게 전쟁과 제국, 인종과 계급의 역사에 개입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2장. 모기와 제국: 질병이 만드는 패권의 지도

모기는 한 나라를 무너뜨린다. 군대를 지치게 하고, 문명의 확장을 가로막고, 제국의 꿈을 병든 시체 속에 묻는다. 티모시 C. 와인가드의 『모기』는 이 미세한 생물이 어떻게 역사의 강물을 바꿨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복자와 황제, 군사력과 외교술이 역사를 움직였다고 배웠지만, 와인가드는 이 틈에 파고든 가장 치명적이고 일관된 행위자—모기—를 발견한다. 이 장은 모기가 만든 세계사, 특히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중심으로 제국의 지도를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를 살핀다.


1.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영토보다 강한 병원체

기원전 323년, 세계 정복을 눈앞에 둔 알렉산더 대왕은 바빌론에서 갑작스럽게 병을 앓다 죽는다. 그의 죽음에 대한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와인가드는 그것이 모기 매개 질병—말라리아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바빌론은 당시 물이 많은 지역이었고, 말라리아의 주요 전파자인 아노펠레스 모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인물의 죽음이 아니라, 제국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장면이다. 알렉산더가 살아 있었다면, 그리스-페르시아-인도 문화권이 한데 엮인 초제국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말라리아는 인간의 야심을 꺾는 데 단 한 번의 흡혈로 충분했다.


2. 로마 제국과 ‘악한 공기(mal aria)’

‘말라리아(malaria)’는 라틴어로 ‘나쁜 공기’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습지에서 풍기는 악취가 사람을 병들게 한다고 믿었으며, 이는 당시 의학 지식으로는 타당한 설명이었다. 실제로 로마 주변의 판타노 습지(Pontine Marshes)는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는 지역이었다.


로마는 전성기 동안 이 습지를 배수하고 관리했지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유지 체계가 무너졌고, 말라리아는 다시 활개를 쳤다. 농민들은 병들어 땅을 버리고 도시로 피했고, 군사 주둔지도 약화되었다. 말라리아는 점점 로마 자체의 면역체계를 갉아먹었고, 결국 북방 민족의 침입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병이 국경보다 먼저 무너졌다.


3. 식민주의와 생물학적 패권의 좌절

근대 유럽 제국주의는 과학과 문명을 앞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했다. 그러나 총과 배, 언어와 법률보다 강력한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모기였다.


아프리카는 ‘백인의 무덤’이라 불렸다. 19세기까지 유럽인들은 내륙 아프리카에 깊숙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말라리아와 황열병 때문이다. 흰 피부는 곧 병의 표적이 되었고, 식민 관리들과 병사들은 내륙 진입 후 수주 내에 고열과 경련으로 죽어나갔다.


이 상황은 ‘백인 우월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현실에서 무력화시켰다. 흑인 원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말라리아에 내성을 가진 반면, 유럽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지배하려면, 먼저 모기와 싸워야 했다. 이 생물학적 한계는 결국 식민 행정 시스템과 의학 기술의 급진적인 발달을 촉발했다.


4. 질병의 인프라: 프랑스 vs. 영국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 확장 경쟁은 단지 총칼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질병을 더 잘 통제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알제리와 서아프리카에서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수많은 인력을 말라리아로 잃었다. 특히 마다가스카르 침공 당시, 사망자의 80% 이상이 전투가 아니라 질병에 의한 것이었다.


반면, 영국은 인도의 열대병에 대비해 방역 정책과 의료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런던에 ‘열대의학 학교’를 설립하고, 퀴닌(말라리아 치료제)을 전략 물자로 간주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제국 내 행정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병이 국가 전략의 일부가 된 셈이다.


5. 황열병과 미국의 파나마 운하

1904년, 미국은 파나마 운하 건설에 착수했지만, 초반의 가장 큰 적은 자연도, 공사도 아니었다. 그것은 모기와 황열병이었다. 프랑스가 먼저 시도했던 이 사업은,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수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며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


미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위생 장교 윌리엄 고거스(William Gorgas)를 중심으로 파나마 지역의 모기 박멸 작전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하수도 정비, 고인 물 제거, 방충망 설치, 백신 배포 등 대규모 위생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마침내 병의 확산을 통제했고, 공사는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


이 과정은 질병이 단지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술, 정치, 자본이 총동원되는 거대한 체계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모기와 싸우는 일은 곧 제국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마무리하며

이 장은 모기가 단순히 전염병의 매개체가 아니라, 역사의 구조를 결정짓는 권력 요소임을 보여준다. 알렉산더를 쓰러뜨리고, 로마를 병들게 하고, 유럽의 식민주의를 지연시키고, 미국의 제국 건설을 재편한 것은 결국 이 작은 곤충의 날갯짓이었다. 와인가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생태적 행위자들이 어떻게 세계의 구조를 다시 쓰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모기는 단순한 자연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욕망, 기술, 제국주의, 인종주의, 의료 체계, 정치 권력과 얽힌 복합적인 생물-정치적 존재다. ‘작은 포식자’는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인간은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지배당해왔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모기-권력 구조가 노예제도, 인종의 위계, 식민지 경제와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제3장. 모기와 전쟁: 병력보다 치명적인 병

전쟁은 총칼만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의지와 무기 사이에서 종종 전쟁의 흐름을 결정짓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다. 그중 가장 일관되고 치명적인 전쟁 개입자는 다름 아닌 모기다. 티모시 와인가드가 설득력 있게 보여주듯, 모기는 고대 전쟁에서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병사들의 피를 빨며 직접 전투에 참여했고, 수많은 병력 손실과 전략의 수정, 패배와 승리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이 장에서는 말라리아, 황열병, 참호열 등을 중심으로 모기와 전쟁이 맺어온 ‘숨겨진 동맹’을 살핀다.


1. 미국 독립전쟁과 말라리아: 지형을 아는 자가 승리한다

미국 독립전쟁은 단순한 식민지 해방의 투쟁이 아니라, 모기와 말라리아가 ‘보이지 않는 편’을 들었던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 남부 지역은 말라리아가 만연한 습지대였고, 현지 주민들과 병사들은 어느 정도 면역을 갖고 있었다. 반면, 영국군과 독일 용병은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고, 진군 도중 말라리아로 대규모 병력 손실을 겪었다.


특히 1781년, 요크타운 전투를 앞두고 영국군의 말라리아 감염률은 50%에 육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 워싱턴은 이를 역이용해 전투 시기를 늦추고, 모기가 영국군을 약화시킨 뒤에 결정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즉, 독립전쟁의 승리는 무력뿐 아니라, 병을 아군으로 만든 시간 전략의 승리였다.


2. 남북전쟁: 같은 병, 다른 내성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전쟁은 정치적·경제적 분열의 상징이지만, 그 이면에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남부는 열대 기후와 풍부한 습지로 인해 모기의 천국이었고, 이곳 병사들은 유년기부터 말라리아에 노출돼 부분적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북부 병사들은 남부로 내려오는 순간, 모기 매개 질병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군사적 손실보다 의무병력의 손실이 더 심각했다. 북부는 이에 맞서 퀴닌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위생병과 의무대를 동원하는 등 전례 없는 군의학 체계화를 시도했다. 남북전쟁은 모기를 상대로 벌인 의료 혁신의 시험장이기도 했다.


3. 세계대전의 그림자: 참호열과 말라리아 전선

1차 세계대전은 참호 속의 전쟁으로 기억되지만, 그 어두운 진흙탕에는 참호열(trench fever)과 말라리아가 깊이 스며 있었다. 참호열은 주로 이가 매개한 질병이지만,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와 황열병 역시 지중해 전선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군을 위협했다.


2차 세계대전은 한층 더 조직적인 질병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태평양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말라리아로 인한 병력 손실이 극심했다. 미군은 퀴닌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 초반 일본에 점령당한 인도네시아의 키나 수출로를 대체할 수 있는 합성 항말라리아제(아테브린)를 개발했다.


히틀러의 독일은 대서양 방벽이나 동부전선의 진격에 집중하면서도, 아프리카 군단의 열대병 통제를 소홀히 했고, 이는 독일군의 중장기 전략에 심각한 인력 손실과 사기 저하를 가져왔다. 말라리아는 그 자체로 지연과 실패를 만들어내는 전략적 행위자였다.


4. 군의학과 질병의 군사화

전쟁은 언제나 기술을 진보시키는 실험장이었다. 군의학은 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19세기 말부터 각국은 병력을 유지하고자 의료 행정, 병리학, 예방의학, 위생학을 군사전략에 편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위생장교 체계를 정비하고,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DDT와 방충망, 백신 연구에 국가적 자원을 투입했다. 군대는 단지 질병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예측하고 통제하며, 때로는 이를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질병의 군사화’란 단지 방어를 넘어서, 모기와 병을 전쟁의 변수로 다루고, 이를 통제하는 자가 전쟁의 판을 주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질병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 전투 계획의 핵심 항목이 되었다.


5. 병참과 모기 없는 전선의 가능성

현대 전쟁은 점점 더 기술 집약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모기는 여전히 전투와 점령, 주둔의 환경 속에서 살아 숨 쉰다. 특히 열대 지역 분쟁이나 평화유지군 파견, 인도주의적 작전에서 모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모기 없는 병참선’이란 환상에 가깝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국제 작전에서 모기는 여전히 병력 유지의 최대 변수다. 제약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모기의 생존 전략은 끈질기며, 전염병은 국경과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6. 질병이 결정한 전투, 전투가 만든 질병지형

모기는 단지 전투의 방해자가 아니라, 전투의 조건을 창출하는 행위자다. 어떤 지역이 전선이 되었는가, 어떤 부대가 후퇴했는가, 왜 그 계절에 공세를 멈췄는가—이 모든 질문 뒤에는 종종 모기와 질병의 흔적이 있다.


동시에 전투 자체가 새로운 질병지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참호, 야전 숙영지, 불완전한 위생 구조, 병참선의 붕괴는 곧바로 모기 서식지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모기와 인간은 전쟁터에서 공진화하며, 그 흔적은 각국의 군사 전략, 의료 시스템, 심지어 외교 지도에서 여전히 나타난다.


마무리하며

모기와 전쟁의 관계는 단순한 방해 요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문명의 확장과 충돌, 그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생물학적 투쟁의 최전선이다. 와인가드는 모기를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 참여자"라고 말한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입증되는 사실이다. 모기는 인간의 전쟁을 파괴했고, 인간은 모기를 제거하려다 더 복잡한 병리학적, 정치적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전쟁은 인간의 의지가 가장 강하게 발현되는 공간이라면, 모기는 그 의지를 가장 집요하게 시험하는 존재다. 승리는 더 이상 총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전에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을 갖춘 병력, 보급 가능한 퀴닌, 방충망과 하수 체계를 가진 쪽이 이기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모기-전쟁 관계가 노예제도, 인종의 위계, 경제 질서와 어떻게 교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탐색해본다. 전쟁은 모기를 부르고, 모기는 인간사를 다시 쓴다.


제4장. 생물정치와 질병의 통치: 모기와 근대 국가

– 모기를 향한 국가 권력의 형성과 그 계보


근대 국가의 정체성은 군사력이나 법률 체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티모시 와인가드가 강조하듯, 모기와의 싸움은 근대 국가의 행정적 정체성과 기술적 진화를 규정지은 결정적 축이었다. 인간이 모기를 두려워할 때, 국가는 그 공포를 관리하고 해소하는 권력의 원천이 되었다. 이 장은 모기라는 존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적'으로서 국가 기획의 대상이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생물학적 삶의 통치로 연결되었는지를 추적한다.


1. 모기와 위생국가의 탄생

19세기 후반, 질병은 더 이상 신의 형벌이나 개인의 운명으로만 간주되지 않았다. 특히 콜레라와 말라리아의 확산은 국가가 개입해야 할 공공 위생의 문제로 부상했다. 모기는 이 위기의 중심에 있었고, 이는 곧 ‘위생국가’(hygienic state)의 등장을 불러왔다.


근대 보건 행정의 출발점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정비하고 환경을 관리하며, 인구 전체를 규율하는 체계의 마련이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모기 매개 질환에 대응하기 위해 방역 사무국, 위생 감시 체계, 의료 경찰과 같은 행정적 기구가 신설되었다. 이때부터 질병은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인구를 관리하고 규율하는 통치의 한 양태가 되었다.


2. 도시 위생화와 공간 통치

모기는 단지 생물학적 해충이 아니라, 공간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말라리아를 없애기 위해 국가들은 도시 공간을 다시 설계하고, 하수 시스템을 정비하며, 배수 구조를 개선하고, 습지를 매립하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도시는 모기가 사라지도록 만들어져야 했다. 이는 물리적 공간의 재편뿐 아니라, 공공 위생을 중심으로 시민의 일상적 삶을 재조직하는 일이기도 했다. 방충망 설치, 물웅덩이 제거, 정기적 소독 등은 국가의 위생 명령이 사적인 주거 영역까지 침투한 사례다. 즉, 모기는 민간과 공공의 경계를 흐리며, 권력이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통로가 되었다.


3. 백신과 살충제: 국가 권력의 기술적 진화

국가는 ‘모기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20세기 초, 퀴닌과 같은 항말라리아 약물의 대량 생산, 백신 개발을 위한 생물학 연구소 설립, 그리고 무엇보다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의 도입은 위생국가의 정점을 상징했다.


DDT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이 병력 보호를 위해 사용한 이후, 곧바로 국가적 방역 전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 등은 DDT를 살포하여 말라리아의 발병률을 대폭 낮췄고, 이는 국가가 생명과 공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곧 생태계 교란과 화학물질의 축적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났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DDT의 위험성을 고발하며 생태적 감수성과 정책적 반성의 계기를 제공했고, 이는 통치 기술의 무제한적 낙관에 균열을 일으켰다.


4. 유전학과 생물학적 통치의 심화

21세기 초, 유전공학과 분자생물학이 발전하면서 국가의 방역 전략은 단순한 살충제를 넘어서 유전자 조작, 생물학적 억제, 합성 생태계 조절로까지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 옥스퍼드에 기반을 둔 생명공학 기업 옥시텍(Oxitec)은 자손이 생존할 수 없는 유전자 변형 수컷 모기를 개발하여 말라리아 발생 지역에 방출했다.


이는 생물 자체를 조작해 질병을 ‘근절’하려는 시도였으며, 국가와 민간 기술 자본의 결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방역 모델이었다. 하지만 유전자 변형 생물의 생태적 안전성, 장기적 영향, 생명권에 대한 윤리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모기를 통제하려는 기술은 언제나 삶 자체를 재편성하려는 권력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5. 푸코와 생물정치의 시선: 질병은 통치의 장치다

미셸 푸코는 근대 국가의 특징을 “죽게 둘 수도, 살게 할 수도 있는 권력”으로 정리했다. 생명을 통제하는 이 권력을 그는 ‘생물정치’(biopolitics)라 불렀고, 이는 개별 신체가 아니라 집단적 생명, 인구 전체에 작동하는 권력을 뜻한다.


모기는 생물정치의 작동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다. 국가가 모기를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백신, 도시 설계, 유전자 조작, 살충제 사용—은 단지 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명은 보호할 가치가 있고, 어떤 삶은 배제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포한다.


푸코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기를 향한 국가의 전략은 단지 위생과 건강의 문제를 넘어서, ‘누가 살고 누가 죽는가’를 둘러싼 권력의 계보라 할 수 있다. 질병은 자연이 아니라 정치이고, 통제의 방식이며, 국가의 정체성과 기획을 가시화하는 장치인 셈이다.


마무리하며: 모기를 통제하려는 권력, 인간을 재구성하다

모기를 향한 국가의 투쟁은 단순한 위생 문제를 넘는다. 그것은 국가가 생명, 공간, 기술, 윤리를 교차시켜 통치하는 현대 권력의 전형이다. 모기 방역은 생명을 보호하는 행위인 동시에, 삶의 형태와 인간 존재의 조건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티모시 와인가드가 강조하듯, 모기는 인간의 삶에 단순히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조직하고 지배하며, 미래를 설계하는가를 결정짓는 존재다. 모기는 단지 병을 퍼뜨리는 해충이 아니라, 근대 국가의 구조와 통치 기술의 형성사 속에 위치한 정치적 타자였다.


다음 장에서는 이 생물정치의 지평을 넘어, 모기와 인종, 제국, 자본이 어떻게 교차하며 차별과 착취의 구조를 형성해왔는지, 특히 노예무역과 노동 착취 시스템에서 모기가 어떤 ‘중개자’였는지를 살펴본다.


제5장. 모기와 인종, 젠더, 계급: 누구의 피를 빠는가

– 생물학적 위험과 사회적 불평등의 교차


모기는 무차별적으로 피를 빠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모기의 피해는 무작위가 아니라, 철저히 구조화된 방식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되어 왔다. 말라리아, 황열병, 지카바이러스, 뎅기열과 같은 모기 매개 질환은 빈곤한 사람들, 여성이며 유색인종이고, 정치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집단을 우선적으로 겨냥해왔다. 이 장에서는 ‘작은 포식자’가 어떻게 사회 구조 속의 불평등을 감지하고, 그 경계를 따라 이동하며, 차별의 생물학을 수행했는가를 살펴본다.


1. 감염의 불평등: 가난한 이들의 병

질병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같은 병이라도 누가 병에 걸리고, 누구는 치료를 받고, 누군가는 죽는가는 사회적 지위, 거주 환경, 의료 접근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모기는 깨끗한 위생 환경에서 멀어진 곳—상하수도 미비, 정체된 물, 폐허가 된 도시 외곽—에서 번식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물고 병을 옮긴다. 이러한 조건은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삶과 겹친다. 말라리아는 현재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아마존 지역의 저소득층에게 가장 치명적인 병이다.


티모시 와인가드는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역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병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방치되고, 더 늦게 해결되었으며, 종종 이용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감염병은 단지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이 낳은 불평등의 반영이다.


2. 열대병과 식민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19세기 유럽 제국주의는 ‘문명화 사명’을 앞세워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로 진출했지만, 그 이면에는 열대병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은 유럽 식민 세력을 괴롭혔고, 이는 곧 질병에 대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정당화로 이어졌다.


열대병은 현지인의 "더럽고 미개한 삶"에서 비롯되며, 백인은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고는 방역과 도시 설계, 병원 접근, 식수 위생에서 철저한 이중 구조를 낳았다.

유럽인은 고지대에 ‘식민자 전용 도시’를 건설하고, 현지인들은 습지대와 저지대에 밀어넣었다. 이런 공간적 분리는 질병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고착시켰다.


이러한 인종적 위생 담론은 단지 식민지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글로벌 방역 정책에서 어떤 지역의 고통은 ‘일상적 위험’으로 간주되지만, 서구 사회의 감염은 ‘비상 사태’로 받아들여진다.


3. 여성, 임산부, 아동—모기가 선택한 사회적 몸

모기는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취약한 몸을 선호한다. 지카바이러스의 확산은 여성, 특히 임산부를 직접 겨냥했고, 브라질과 남미 일부 지역에서는 태아의 뇌손상(소두증)이 급증하면서 여성의 생식권과 보건권이 중대한 위협을 받았다.


여성은 종종 방역 대상이자 방역 책임자로 이중의 짐을 진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모기장을 마련하거나 살충제를 사용하는 일이 여성의 몫이고, 병에 걸린 아이를 간호하는 것도 여성의 일이다.


또한 어린이와 노약자 역시 면역체계가 약해 모기 매개 질환에 더 취약하며, 이들의 생존은 가족의 경제 상황, 국가의 의료 시스템, 국제 원조의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 모기는 인간 사회의 약점을 정확히 읽어내며, 그 약점에 침투한다.


4. 제약 산업과 의료 접근성의 불균형

모기 매개 질환 치료를 위한 백신과 약물은 대부분 선진국의 제약 회사에 의해 개발된다. 하지만 이들이 필요한 지역, 즉 감염자가 많은 지역은 구매력이 약한 제3세계 국가들이다. 따라서 치료제는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하지 않고, 종종 국제기구나 NGO의 개입이 없으면 공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조는 “누가 아픈가보다, 누가 살릴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묻는 정치경제적 문제를 낳는다. 백신 개발의 인센티브는 수익성이 아니라 생명 가치의 위계에 의해 좌우된다. 이 구조는 2020년대 코로나19 백신 불평등에서도 반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신약은 제약 특허 보호로 인해 고가에 묶이고, 제3세계 국가들은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법적으로 ‘강제실시권’을 발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말라리아 치료제도 마찬가지였다.


5. 생물학적 불평등의 정치경제

질병은 단지 몸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다. 모기 매개 질환은 지리, 기후, 빈곤, 인종, 젠더, 자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재생산한다.


티모시 와인가드는 인간의 역사에서 모기가 단순히 ‘죽음을 퍼뜨린 생물’이 아니라, 어떤 집단은 보호되고, 어떤 집단은 방치된다는 위계적 현실을 증폭시킨 행위자임을 보여준다. 모기는 차별과 착취의 생물학적 인프라를 구성했다.


‘누구의 피를 빠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누구의 생명이 중요하게 여겨지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생물학적 불평등은 우연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과 무관심의 결과물이다.


마무리하며: 모기는 사회의 경계를 물고 들어온다

모기는 공평하게 날아다니지만, 공평하게 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대상은 언제나 사회 구조가 정한 경계에 의해 결정된다. 모기는 ‘취약한 몸’을 물고, 그 몸은 경제적 약자, 여성, 유색인종, 법적 보호가 미약한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티모시 와인가드가 그려낸 모기의 계보학은 곧 사회적 불평등의 생물학적 지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 장에서는 모기와 기후 위기, 기술적 대응, 윤리적 질문이 교차하는 미래의 지형을 살펴보며, 인류가 이 작은 포식자와 어떤 방식으로 공존 혹은 대결하게 될지를 성찰한다.


제6장. 질병의 제국, 제국의 기억: 모기와 역사 서술의 전환

– 생물과 기억 사이의 정치


모기는 단순한 병원체의 매개체가 아니다. 모기를 통해 서술된 역사는 인간의 의지와 영웅담 중심의 역사관에 균열을 낸다. 티모시 C. 와인가드의 『모기』는 병원체를 주인공 삼아 인류사를 다시 쓰는 급진적 시도다. 이 장에서는 모기가 어떻게 역사의 전개를 결정지은 ‘비인간 행위자’가 되었으며, 그런 인식이 역사서술의 방법론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1. 병원체 중심의 역사 서술: 인간 중심주의의 균열

전통적인 역사 서술은 국가, 제국, 영웅, 전쟁, 경제 발전 같은 인간 중심적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등장한 환경사, 생태사, 기술사, 미생물사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누가 역사를 만드는가?”

“인간만이 역사적 행위자인가?”


와인가드는 질병과 모기의 궤적을 따라가며, 역사의 중력 중심이 ‘인간의 의도’에서 ‘환경의 조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라리아가 없었다면 알렉산더 대왕은 더 멀리 나아갔을 수도 있고, 로마 제국의 붕괴는 몇 세기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병이 사람을 만든 것이지, 사람이 병을 만든 것만은 아니다.


2. 모기는 주체인가, 조건인가?

모기는 ‘주체’일까, 아니면 ‘배경’일까?

와인가드는 이 질문에 명시적으로 답하지 않지만, 그의 서술 방식은 모기를 단순한 매개체가 아닌 능동적 행위자로 다룬다. 모기는 전략적이다. 특정한 기후 조건, 생태 구조, 인구 밀도, 위생 체계를 읽고, 그 경로에 따라 병을 옮긴다.


이는 브루노 라투르가 말한 ‘비인간 행위자’(actant)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인간의 세계는 인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모기는 인간 제국의 허영과 무지를 조용히 파괴해왔고, 문명의 전진을 결정지은 생물학적 조건 중 하나였다.


3. 환경사, 동물사, 미생물사의 경계에서 읽는 ‘모기사

최근 역사학은 인간 중심적 서술 방식에 대한 비판을 넘어, 비인간 존재들의 ‘역사성’을 적극 탐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환경사는 기후 변화와 지형, 생태계가 인간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동물사는 가축, 해충, 야생동물 등이 인간과 맺은 상호작용을 조망하며,

미생물사는 병원균,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미시적 존재가 사회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탐색한다.


모기는 이 세 흐름을 교차하는 존재다.

그는 동물이면서 병원체와 공진화하고, 특정 환경에서만 생존하며, 도시화와 농업 확장에 따라 서식지를 바꾼다. 모기사를 쓰는 일은 결국, “인간 중심의 역사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라는 이론적 실험이기도 하다.


4. 모기 없는 유럽, 모기 많은 아프리카: 기억의 불균형

오늘날 유럽과 북미는 대부분의 모기 매개 질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반면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의 저소득 지역은 여전히 말라리아와 뎅기열, 지카로 고통받는다.

이 격차는 질병의 현재뿐 아니라, 역사 기억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기는 제국을 흔들었지만, 그 흔들림의 기억은 식민지에 더 깊게 새겨져 있다. 서구 사회는 이미 질병을 통제하고 잊었지만, 전염병은 여전히 ‘비문명 세계’를 규정짓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기억의 공간도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누구는 질병을 ‘과거’로 기억하지만, 누구에겐 ‘현재’이자 ‘미래’다.

질병의 기억은 지리적이면서도 계급적이고, 인종적인 층위를 갖는다.


5. ‘비가시적 주체’의 회복

질병, 기생충, 모기, 공기, 물, 폐기물—이들은 역사에서 쉽게 삭제되거나 배경으로만 다뤄졌던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존재들이야말로 문명의 구성자이자 경계 설정자였다.


‘비가시적 주체’의 회복은 역사 쓰기의 윤리적 전환이기도 하다.

역사는 더 이상 강자의 이야기, 의도를 가진 행위자만의 기록이 아니다.

우발성, 자연, 기술, 병원체, 환경, 감염된 몸 모두가 이야기할 자격을 갖는다.


와인가드는 모기를 통해 그동안 배제되었던 수많은 타자들이 역사적 행위자로 복원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6. 복합적 역사 쓰기의 가능성: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시간성

우리는 이제 ‘모기 없는 세계’나 ‘병 없는 문명’을 상상할 수 없다. 오히려 인류사는 비인간 존재들과 얽히고설킨 복잡한 네트워크의 결과로 존재해왔다.

이러한 사유는 역사 서술 방식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 vs. 자연의 이분법을 넘어,


미시적 존재와 거시적 구조를 연결하고,


전염병의 우발성과 제국의 계획성을 교차시키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역사적 서사가 가능해진다.


티모시 와인가드의 시도는 단지 질병사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는 어떤 눈으로 과거를 바라볼 것인가?”

“비가시적 존재들과 공존하는 감각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마무리하며: ‘모기의 역사’가 역사의 가능성

『모기』는 인류 중심주의에 균열을 내고, 질병과 생물이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증한다. 이 책은 단지 과학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중서가 아니다.

기억되지 않은 힘들, 기록되지 않은 주체들,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흔적을 복원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질병이 만든 제국, 그리고 제국이 만든 질병—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모기를 이해하는 일은 곧, 우리가 어떤 존재를 ‘역사적’이라고 부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제7장. 생태위기와 모기: 미래의 인간, 미래의 질병

– 기후, 유전자, 인간중심주의 이후의 공존 시나리오


모기는 과거의 질병만을 상기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작고 불가해한 존재는 미래의 생태계, 기술, 정치, 윤리의 갈림길을 비춘다.

기후 변화, 도시화, 세계화, 생명공학의 발전은 모기의 생태적 위치와 위협 양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 장에서는 모기를 둘러싼 미래 담론—기후위기, 유전자 조작, 팬데믹 가능성, 생물윤리—을 통해 탈중심화된 인간의 조건을 사유해본다.


1. 기후위기와 모기의 북상: 말라리아의 재유럽화

모기의 생존 조건은 섬세하다. 기온, 습도, 강수량, 수자원은 모기의 개체 수와 활동 반경을 좌우한다.

기후변화는 이 조건들을 급속히 재편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남부 등지에서 말라리아 원인체를 보유한 모기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열대와 아열대에 국한됐던 뎅기열, 치쿤구니야, 지카 바이러스도 지중해를 넘어 북쪽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인다.


‘모기의 북상’은 단순한 생태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 시스템을 변형시킨 결과이며, 인간 또한 그에 따른 생물학적·정치적 리스크를 감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류가 파괴한 기후는,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모기를 만들어냈다.


2. 도시화, 지카 바이러스, 초연결 사회의 감염 경로

지카 바이러스는 2015~16년 남미에서 대유행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 바이러스는 모기를 통해 전파되었고, 임신부 감염 시 신생아의 소두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포가 확산됐다.


그런데 지카는 단순한 병원체가 아니었다.

도시화, 빈곤, 기후, 인구밀도, 교통망, 성별, 젠더의 문제가 얽혀 있던 ‘복합 위기’였다.


도시의 열섬 현상은 모기의 서식지를 확장했고,

불균형한 도시 인프라는 방역 사각지대를 만들었으며,

글로벌 이동성은 지역적 유행을 전 세계화시켰다.


감염의 불평등은 사회적 조건의 차이로 드러났고, 이는 모기를 단순한 ‘바이러스 운반자’가 아닌 구조적 위기의 지표로 읽게 했다.


3. 팬데믹의 전조: 항생제 내성과 신종 병원체

모기는 인류와 공진화한 병원체의 매개자다.

이들은 진화한다.

특히 항생제 남용, 도시화, 농업의 집중화는 병원체의 내성을 강화시켰고, 모기 또한 그 진화의 일환으로 더 정교하고 위험한 바이러스를 운반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기 매개 바이러스가 21세기 신종 팬데믹의 주요 후보군이라고 경고한다.


모기뿐 아니라 ‘기생 환경’ 자체가 고도로 복잡한 감염 구조를 만들어 인간의 예측 능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는 단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생태적 위기와 생물학적 복잡성에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4. 게놈 조작 모기와 생물윤리의 충돌

최근 등장한 유전자 조작 모기(GM Mosquito)는 인간이 주도하는 새로운 방역의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옥시텍(Oxitec) 같은 생명공학 기업은 불임 유전자를 삽입한 수컷 모기를 방출해 전체 개체 수를 통제하려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험에는 윤리적, 생태적, 정치적 논쟁이 뒤따른다.


유전자 조작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으며,


기술 독점은 특정 기업과 국가가 ‘질병 통제의 주권’을 갖게 만드는 위험을 내포한다.


더욱이 제3세계 지역에 먼저 실험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적 불평등이 생명공학 실험의 지형으로 확장되고 있다.


‘모기를 죽일 것인가,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방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기술을 통해 무엇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가라는 인식론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5. 인간은 중심인가, 조건인가? 생태-정치적 주체의 전환

모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과연 이 행성의 중심인가?

우리는 병원체, 매개체, 기후와 공존하면서도, 그것을 제어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와 모기, 유전자 조작과 팬데믹은 모두 ‘탈중심화된 인간상’을 요구한다.

인간은 더 이상 신적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생태계의 일부로, 조건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정치적 주체로 재규정되어야 한다.


이는 푸코의 생물정치 개념을 넘어, 하라웨이(Donna Haraway)의 ‘교잡적 존재(chthulucene)’, 브루노 라투르의 ‘지구에 착륙하기’, 티모시 모턴의 ‘탈(脫)상호주체성’ 같은 개념들과도 조응한다.


마무리하며: 모기 없는 미래는 가능한가?

우리는 모기를 제거하려 하고, 질병을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이 생물은 여전히 진화하고, 조건을 읽으며, 인간을 따라 움직인다.

모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생태계 전체를 조정하려는 위험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에 맞서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죽이기’가 아닌 관찰과 조정의 생태정치

기술 통제가 아닌 공존과 책임의 윤리

생존이 아닌 상호의존의 조건으로서의 인간 재규정


모기와 함께 사는 법은 곧,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에필로그

문명의 경계에서, 다시 모기와 만나다

— 모기와 함께 쓰는 인류의 새로운 서사


1. 병의 유전자를 따라가는 새로운 인문학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는 단순히 해충의 생태를 다룬 책이 아니다. 그것은 병의 이동 경로를 따라 인류의 문명을 재독해하려는 시도이며, 생명정치와 질병사, 제국주의와 기술사의 복합지형을 탐사하는 새로운 인문학의 예시다.


우리가 흔히 간과해온 생물적 요소—모기, 병원체, 기후, 습지—는 사실상 문명의 형성과 붕괴, 전쟁과 평화, 제국의 팽창과 후퇴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었다.

이는 인간이 역사의 유일한 주체라는 ‘인간중심주의적 서사’를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도전이기도 하다.


질병과 모기는 시대마다 다르게 기록되거나 잊혔으며,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가시화되거나 은폐되었다. 모기의 역사는 곧 누가 역사에 남고, 누가 삭제되는가라는 서술의 정치이기도 하다.


2. 인간 중심의 역사 쓰기를 넘어서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을 배경으로 삼고, 자신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아왔다. 그러나 모기는 끊임없이 그 중심을 교란해왔다.

티모시 와인가드는 인간의 영웅적 서사—정복, 개척, 진보—의 배후에 숨어 있는 작고 치명적인 존재의 흔적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문명을 무너뜨리는 힘은 항상 인간에게서만 비롯되는가?”

“작은 곤충 하나가 역사의 방향을 틀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은 푸코의 생물정치,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그리고 환경사·동물사·미생물사적 관점과 맞닿는다.

다시 말해, 모기는 ‘질병’의 매개체일 뿐 아니라, ‘서사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행위자이자 조건이다.


3. “죽여야 할 대상”인가, “공동의 조건”인가

20세기 근대국가는 모기를 ‘제거해야 할 위협’, ‘근대화의 장애물’로 간주하며 방역과 위생의 체계를 구축해왔다. 살충제, 백신, 유전자 조작 등은 모두 ‘죽임’의 기술, 곧 통제와 지배의 서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DDT는 일시적 효과를 냈지만 생태계 전반의 혼란과 내성을 유발했다.

유전자 조작 모기는 방제 효율을 높였지만, 생물윤리적 불안과 제약 산업의 독점 문제를 낳았다.

팬데믹은 인간이 생태계의 중심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모기는 제거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우리가 공존해야 할 조건인가?”

이는 단지 곤충 한 종에 대한 생물학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정치적 선택이다.


4. 모기와 함께 쓰는 인류의 새로운 서사

모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기후 위기의 시대, 북상하는 병원체, 도시화된 습지, 그리고 초연결된 인류 문명 속에서 모기는 더 정교하고, 더 넓게,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모기는 불쾌함, 공포, 증오의 대상이면서도 우리가 만든 세계의 결과이자, 우리와 얽힌 관계의 징후다.

우리는 모기를 통해 위계화된 생명관, 편향된 지식 체계, 불평등한 정치경제 질서, 생태적 오만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는 모기와의 관계를 다시 써야 한다.

‘역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기후, 병원체, 미생물, 동물, 곤충, 알고리즘까지—우리는 인간 너머의 존재들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다중적 행위자들이다.


모기를 다시 만나는 것은 곧,

문명의 경계에서 새로운 서사를 시작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기와 함께 써 내려갈 인류의 서사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지 의학적, 생물학적, 위생학적 과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역사 쓰기를 넘어서는, 더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감염의 정치와 생태의 윤리를 상상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마크 해리슨은 『질병과 제국』에서 제국의 팽창이 어떻게 병의 지리를 변화시켰는지를 날카롭게 추적하며, 질병이 단지 제국주의의 장애가 아니라 그것을 구조화한 핵심 요소였음을 강조한다. 백인 중심의 위생학, 식민지의 도시 설계, 방역 기술의 수입과 실험은 단지 보건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적 위계와 권력의 논리였다. 모기와 병원체는 이러한 식민 권력의 테크놀로지를 따라 움직였고, 때로는 그것을 무너뜨리는 반란의 주체이기도 했다.


유발 하라리 또한 전쟁과 병원체의 관계를 반복해서 강조해왔다. 인간이 만든 전쟁이 병을 부르고, 병이 다시 전쟁의 양상을 뒤바꾸는 복합적 구조 속에서, 병원체는 항상 인간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전략가였다. 우리가 흔히 승자의 이야기로 이해해온 전쟁사조차, 실제로는 질병의 궤적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모기는 그러한 전환점마다 **‘결정적 침입자’**로 작용해왔다.


로리 개럿의 『다가오는 역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지구화된 경제와 이동성이 병원체의 확산을 어떻게 가속화하는지, 그리고 각국 보건 시스템의 취약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난을 증폭시키는지를 경고한다. 그녀는 특히 감염병을 둘러싼 정보의 불균형, 대응 역량의 차이, 백신 및 치료제의 정치화가 질병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모기학 역시 더 이상 생물학의 영역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전 세계는 모기와 감염병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WHO와 CDC는 기후 변화에 따른 모기의 확산 경로와 말라리아의 재출현 가능성을 경고하며, 질병 대응을 환경 정책 및 도시 계획과 통합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유전자 조작 모기의 방제 기술을 선도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생물윤리적·생태적 논쟁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전례 없는 방역 효과를 예고하지만, 동시에 생태계 개입의 한계를 경고하며 ‘통제할 수 없는 제어’의 위험을 드러낸다.


이러한 모든 사례는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를 준다. 모기와의 싸움은 곧 인간이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모기를 단순한 제거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우리 문명의 조건을 구성하는 하나의 행위자이자 징후로 이해할 것인지는 결국 윤리적, 정치적, 존재론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모기를 없앨 것인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곧,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공존의 조건을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과 맞닿는다. 모기는 그 물음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문명의 경계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존재의 위상과 관계의 윤리를 다시 묻게 만든다.


그렇다.

모기 없는 세계는 없다. 그러나,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아직 인간의 선택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바로,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써 내려가야 할 인류의 새로운 서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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